<요한복음 3:22~36> 신랑을 섬기는 친구의 기쁨
오늘의 찬송(새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22.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7.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말씀 묵상>
세례자 요한이 증거함
22. 그 후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 지방으로 가셔서 거기서 얼마 동안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습니다.
23. 요한도 살렘 가까이에 있는 애논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나아와 세례를 받았습니다.
24. 이때는 요한이 아직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습니다.
25. 요한의 제자들 중 몇 사람과 어떤 유대 사람 사이에 정결의식과 관련해 논쟁이 붙었습니다.
26.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랍비여, 전에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시던 분, 선생님이 증거하셨던 그분이 지금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 그분께로 가고 있습니다.”
27. 이 말에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하늘에서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내가 전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 보냄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한 말을 증거할 사람들은 바로 너희다.
29. 신부를 얻는 자는 신랑이다. 그러나 신랑의 친구는 신랑을 기다렸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그 음성으로 인해 매우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충만하다.
30. 그분은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해야 한다.
31. 위에서 오시는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는 분이시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해 땅의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오시는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은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거를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이 참되신 분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34.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성령을 한없이 주셨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아들의 손안에 맡기셨다.
36.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다. 그러나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
<오늘의 말씀 요약>
제자들이 요한에게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 가서 세례를 받는다고 전합니다. 이에 요한 자신은 그리스도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신랑의 친구는 신부를 취하는 신랑의 음성을 듣고 기뻐할 뿐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진노가 있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복음 3:22-36(그루터기 선교회)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종들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애잔한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는 세례요한이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이어진 하나님의 침묵이 흐른 후
과연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처럼 등장하는
구약과 율법을 마감하는 선지자가 되었다.[말4:5]
그는 하나님께서 다시 보내신 엘리야가 되어
자식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그리고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로 돌이키기 위해
회개의 세례를 전하는 자로 사역하였으며[말4:6]
무엇보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자기 역할에 충실하였다.
그리고 과연 자신의 장지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예수가 등장 했을 때 그는 예수를 주인공으로 올리고
자신은 구속 역사의 무대 뒤로
그것도 헤롯의 칼날에 의해 사라지게 되는데
오늘의 말씀은 이 세례 요한과 그에게 세례를 받은
예수님의 사역이 서로 중첩되던 시기에
예수님의 등장을 놓고 그와 그의 제자들 사이에
주고받은 대화가 소개 되어 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왠지 모르게 세례요한의
일생을 추적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성경 이곳저곳을 펼쳐보면서 그의 행적을 따라가 본다.
그는 제사장 사가랴와 마리아의 친족 엘리사벳 사이에
태어난 인물인데 예수님의 출생과 관련하여
요셉보다 마리아의 관점에서 기록한 누가복음 1장에는
그가 예수님보다 6개월 앞서 출생되는 것으로 나온다[눅1:30]
그는 일찌기 유대 광야로 나가서 야인으로 산 것 같은데
그가 빈들에서 지낼 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다[눅3:2]
그는 엘리야처럼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마3:4]
메뚜기와 석청으로 음식을 삼고 살면서 회개의 세례를 전했는데
광야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몰려왔다고 한다.[마3:4]
그가 처음 세례를 베풀었던 곳이며 예수님도 세례를 받은 곳은
요단강의 최 하류이며 사해바다의 북쪽 끝 지점인데
이곳 사해 바다가 지중해보다 해면하 -400미터라고 하니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푼 이 지역이
갈릴리 호수로부터 시작하여 사해바다 까지
요단강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 중에서
가장 지형이 낮은 곳으로 이해하게 된다.
한 편 예수님께서도 서른 살쯤 되어 집을 떠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게 될 때 이렇게 낮은 계곡에 위치한
요한의 세례 장소로 찾아와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은
깊은 의미를 시사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처럼 겸손의 골짜기, 낮음의 골짜기로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엿보게 된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 보면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곳이
요단강 건너 베다니가 가까운 강가에서
살렘 가까운 애논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 책의 저자 요한이
"그 곳에 물이 많음이라" 한 것을 보면
이렇게 변수가 생긴 것은 가뭄으로 요단 강물이 줄어들어
세례 터가 바뀐 것을 이해하게 된다.[3:23]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터진다.
요단 강물이 줄어들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세례 요한의 세례 터와 예수님의 세례 터가 서로 가까웠다는 것과
이전에 세례요한에게 열광하고 모여 들었던 수많은 인파가
예수님의 세례 터 쪽으로 몰린다고 하는 점 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직접 세례를 베푼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고 했는데 어찌 되었던 이곳에서
세례를 베풀면서 많은 추종자들이 생긴 것은 틀림없고 [4:1-3]
이것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시기심의 발로가 되었으며
따라서 본문이 보여주는 것처럼 예수님의 등장에 따른 변수로
세례 요한과 그의 제자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자기 제자들이 부추기는 비교의식과 시기심에도 불구하고
세례요한은 자기 제자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자신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하며
예수님의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 것을 자기 제자들에게 분명히 한다.
1. 예수의 등장과 그가 하는 일은
자기를 위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부터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다[3:27]
2.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니 너희는 나를 위해 시기하기보다
내가 그의 앞에 보냄을 받은 자라고 증언해야 한다.
3. 그가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이라면
나는 그를 신부에게 인도하는 신랑의 친구에 불과하며
나는 이런 역할 만으로도 기쁨이 충만하다. [3:29]
4.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3:30]
이어지는 오늘의 말씀 전부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높이고
증언하는 것들로 가득 찬 것을 보면서 [3:31-35]
자신은 한없이 추락하더라도
오직 예수를 높이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세례 요한을 보면서
마음이 숙연해지고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참 종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세례요한에게서 해답을 본다.
이처럼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사역이 서로 중첩되어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갈등이 되었던 이 시기를 지나서
세례요한은 어디로 갔으며 어찌 되었는지 궁금한데
또 다른 복음서에 나오는 말씀들과 성경 지리를 놓고 보면서
그는 예수님과 사역이 서로 중첩되는 것을 피하며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화 되도록 감옥으로 가게 되는 것을 본다.
(내 생각에는 그가 지금까지 길 잡이 노릇했던 예수님이 등장했으므로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향하지 못하게 하고
오직 예수님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감옥에 갈 것을 다 알면서도 헤롯의 권위에 도전하는
강경 발언으로 스스로 감옥행을 택했다고 생각되는데
이 모든 배후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섭리가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14:1-12/ 마가복음6:14-29/ 누가복음 9:7-9에 나오는
세례요한의 생애 말년을 보면
그는 당시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다스리던
헤롯[안티파스]의 죄를 지적하는 것 때문에 투옥된다.
[헤롯 안티파스는 자기 동생이면서 이두메 지역을 다스린
필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자기 아내로 삼은
이 근친상간의 죄에 대해 세례요한으로부터 책망을 받았다
당시 헤로디아는 자기 아버지의 이복동생인 자기 삼촌
헤롯 필립과 결혼했고 여기서 나온 딸이 샬로메인데
이처럼 헤롯 왕가는 왕위 보존 때문에 그랬는지
근친상간 결혼으로 성적으로도 매우 문란했던 것 같다.]
세례요한의 지적에 대해 헤롯은 양심의 가책을 받았지만
그의 정부가 된 헤로디아는 가만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자기 남편 헤롯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세례요한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몄고 세례 요한은 체포되어
사해 바다의 중앙 동편 지역에 있는 헤롯의 여름 궁전
마케로스(Machaerus)의 지하 동굴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때가 AD 27년경으로 보는데 이곳에서 거의 일 년 이상
갇혀 있다가 헤롯의 생일날 정부 헤로디아의 딸이
춤 한 번 잘 춘 것 때문에 무엇이든지 주겠다는 실언을 하고
제 에미의 조정을 받은 딸의 요구대로 세례요한의 목을
참수하여 쟁반에 담아 주게 되는데
이러한 세례요한의 말년이 공관 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세례요한의 증언과 그의 말년에 관한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내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닿아지는 것은
1.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종은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자기 위상을 분명히 하고
자신에 대한 주제 파악을 잘 해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이의 뜻을 따라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야 함을 배운다.
2. 예수님의 일생이 가축의 우릿간 구유에서 시작되어
십자가에서 마감하게 되는 것과 예수의 증언자로 온
세례 요한이 빈들에서 시작되어 감옥에서 마감되는 것을 보면서
진실로 하나님께로부터 세상에 보냄 받은 종이라면
세상의 부귀와 영화와 명예 같은 것에 연연하거나 탐내서는 안 되며
도리어 낮은 자리에 내려가는 것도 당연히 여기고
우리 주님과 세례요한의 길을 따라감을 도리어 감사해야함을 배운다.
3. 그러나 오늘의 말씀에서 정말 가장 마음 깊은 울림으로 닿아지는 것은
세례요한이 자신을 위해서 시기 질투하는 그의 제자들에게 도리어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마음 시린 어록이다.
그는 어찌 이렇게까지 말 할 수 있었을까..........(?)
나의 사역에서 나의 경쟁자가 생겼을 때
그리고 나에게 열광하던 사람들이 나를 떠나며
나를 추종했던 열렬 팬들이 나를 위해 시기할 때
나는 과연 세례요한처럼 이렇게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오직 예수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명예나 목숨조차도
모든 것을 초개같이 여겼던
세례요한이 평생에 품었던
"오직 예수"의 정신을
내게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셔서
거기서 얼마 동안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이때는 아직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더라.
이에 요한의 제자 중 몇 사람과 어떤 유대인 사이에
결례(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그들이(유대인과 논쟁을 벌었던 그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전에 말한바‘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서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라고 한 말을 증언할 자는 바로 너희들이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신랑의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친구(신랑의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친히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셨으나,
그의 증언을 받는 이가 없도다.
그의 증언을 받는 이는 하나님께서 참되시다는 것을 인(印)쳤느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셨기 때문이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세례 요한을 통해 복음 사역자의 자세를 살펴보도록 한다.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요한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그때 세례 요한은 자기의 역할에 대해 분명히 밝힌다.
자신은 신랑이 아니라 신랑 친구이며 결혼식의 들러리로서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고 한다.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를 섬길 때 우리의 역할은 거기까지이다.
예수님의 기쁨과 예수님을 만난 성도의 기쁨에 참여하는 들러리의 기쁨에 만족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인 교회가 만나도록 연결해주는 중매장이에 불과하다.
중매장이는 신랑과 신부가 만날 수 있도록 자리만 마련해주고 눈치껏 빠져야지 계속 눌러 있으면 주책일 수밖에 없다.
세례 요한은 그것을 두고 나는 쇠해야 되고 그는 흥해야 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나는 십자가 뒤에 숨겨지고 예수님은 더 많이 드러나야 올바른 신앙생활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돋보이게 돕는 엑스트라일 뿐이다.
그 경계선을 넘어서는 것은 욕심이요 교만이다.
요한은 앞에서부터 예수님이 말씀해 오신 것을 요약한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그분의 말씀은 권위가 있고, 둘째,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하나님이 부어주신 성령으로 말씀하기 때문이며, 셋째, 말씀에 순종하는 여부에 따라 영생과 진노의 삶이 판가름난다는 것이다.
세상은 다른 사람보다 높아져야 성공한 사람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을 신뢰함으로 겸손하게 소명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칭찬한다.
하나님은 겸손한 태도로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며 맡은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찾으시고 계신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5~6)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마 3:1~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마11:11)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눅 9:7-9)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8-19)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 13:12~1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일 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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