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 묵상(누가,요한복음)

2025년1월7일(화) (요 2:13~25) 세속화된 성전을 향한 거룩한 분노

by 방일 2025. 1. 4.
728x90

 

 

 

<요한복음 2:13~25>  세속화된 성전을 향한 거룩한 분노

 

 

 

 

오늘의 찬송(새 208장 내 주의 나라와)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다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는 사람의 마음속을 아신다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말씀 묵상>

 

 

성전을 청결하게 하심

13.  유대 사람들이 지키는 유월절이 다가오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14.  예수께서 성전 뜰에서 사람들이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또 탁자 앞에 앉아 돈을 바꿔 주는 것을 보셨습니다.
15.  예수께서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들을 모두 성전 밖으로 내쫓고 돈을 바꿔 주던 사람들의 동전을 쏟고 탁자를 엎어 버리셨습니다.
16.  그리고 비둘기를 팔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 버리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17.  예수의 제자들은 “주의 집을 향한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라고 기록된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시69:9
18.  그때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만한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 줄 수 있겠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라. 그러면 내가 3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
20.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대답했습니다. “이 성전을 짓는 데에 46년이나 걸렸는데 당신이 그것을 3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21.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바로 자기 몸을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22.  나중에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을 때에야 제자들은 이 말씀을 기억했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습니다.
23.  예수께서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분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습니다.
24.  그러나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그들에게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25.  또한 예수께서는 사람에 대해 그 누구의 증언도 필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까지 다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요약>

 

 

예수님은 성전에서 짐승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이들의 상을 엎으시며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표적을 보이라는 이들에게 성전을 헐면 사흘 동안에 일으키겠다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의탁하지 않으십니다.

 

 

 

때와 시기와 상황에 맞는 거룩한 분노 터트리기

 

 

요한복음 2:13-25(그루터기 선교회)

 

이 책의 저자 요한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나타난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기를

아주 인상 깊게 남기고 있다.

 

평소에 온유 겸손하시고 자비하신 그가

채찍을 만들어 성전 마당에서

제수 용품으로 팔리는 가축들을 향해

휘둘러 쫒아내시며

환전상들의 돈 통을 뒤 집어 엎으시고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비둘기 케이지[상자]를 들고

이 성전 마당에서 썩 나가라고 하신 것이다

(여기서 비둘기들은 채찍으로 휘두르면

다 날라 갈 것이기 때문에 말로만 하신 것 같다)

 

요한은 예수님의 이 과격한 행동에 대해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이렇게 자신을 삼키게 된 것이라고 하며

이것은 단순한 혈기와 분 냄이 아니라

거룩한 분노요 의분의 표출로 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방문은

이미 열두 살 때부터 시작되었음으로

그가 서른 살쯤 되어 공생애에 나섰으니

벌써 18년이나 이어졌을 텐데

그동안 뒤집어엎고 싶은 마음을

못 본체 침묵으로 일관 하셨던 분이

왜 이제 와서 이렇게 하신 것일까?

 

그것은 이제 막 세례요한을 통해

왕의 대관식으로써 세례를 받으면서

그의 백성들을 향해 나가게 된

그의 공생애 적 소명감이

 

그동안 침묵하면서

활화산을 폭발시키는 용암의 꿈틀거림처럼

그 안에 내재했던 거룩한 분노가

마침내 공생애 출발선 상에서

이렇게 폭발 된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당시 성전 안에서는 멀리서 오는 사람들을 위해

제수 용품의 편의를 제공한다는 구실로

소나 양이나 비둘기 같은 것들을 팔게 했으며

외국에서 오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서는

환전도 하게 하여 제수 용품들을 사게 한 것인데

 

문제는 이렇게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자리세를 뜯어먹는

배후의 성전 지도자들의 흑심이

이처럼 하나님의 성전을

시장바닥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며

 

그들이 독차지 하고 있는 권위 때문에

그 누구도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거나 저항하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나사렛 사람 청년 예수에 의해

정면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는지

이어지는 요한복음 3장을 보면

존경받는 니고데모 같은 사람조차도

이 청년 예수에게 관심을 갖고

밤에 은밀히 찾아와서

청년 예수에게 랍비라 호칭하며

진지하게 상담을 요청할 정도가 된 것을 본다.

 

더불어 예수님의 이 성전 청결사건은

소문의 바람을 타고 온 이스라엘에 퍼졌을 것이니

한 갓 무명의 청년에 불과했던 예수를

전국구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놓아서

그의 공생애 사역을 알리는

특별한 계기도 되었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적용하기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당시 하나님과의 관계는

꽉 막혀 있으면서도

유대교와 제사라는 종교를 이용하여

자신의 뱃속을 채우는 사람들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셨다.

 

이것은 한창 혈기 왕성했던

이십 대에 하신 것이 아니고

삼십 대에 들어서면서 하셨으며

그의 공생에 출발 선상에서 하셨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제사장들이

제사의 공직에 나가는 나이나

일반인이 공인으로 나서는 나이를

율법의 관례에 따라 삼십 세 로 했다]

 

예수님이 자신의 나이가

공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삼십 세쯤에

그리고 더욱 특별히

이제는 사적인 삶이 아니라

아버지의 보내신 뜻을 이루어 드리는

공생애를 출발하시면서

이렇게 돌출적인 행동을 보이신 것은

 

오늘 내가 우리 시대에

우리 교회나 교계 또는 이 사회에서

예수님이 하신 것 같은

돌출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하고자 할 때

내가 그것을 그렇게 할 만한

충분한 이유와 명분과 시기와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로 부터 말미암은

거룩한 의분을 표출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위험에 던지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에 흩어진 양 무리에는

한 치의 관심도 없으면서

자신의 뱃속을 채우기 위해

유대교를 이용하고 있었던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분개하셨다.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리 저리 시달리며 뜯기면서 살아가던

이스라엘의 가련한 양들을 위해

자신이 가만있으면 안 된다는

거룩한 부담도 가지셨다.

 

그래서 자신이 이렇게 하면

미움을 당할 것이고

권위에 도전한 무서운 대가가

자신을 십자가로 몰아가는

위험이 된다는 것도 아시면서도

그러나 그가 아버지께로부터

양들을 위하여 받은 사명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과감하게 권위의 도전에 나선 것이다.

 

요즘 광화문 광장에서

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한 목사님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분이 예수님의 거룩한 분노처럼

그렇게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아시아 언론의 자유 1위 국가로써

대통령을 심하게 모욕하고 하야 운동을 해도

다 묵인할 정도로 자유로운 세상이 되었다.

이전 군사독재 시대에서나 어울릴만한 과격 행동을

보이는 것은 시대에 걸맞지도 않으며

자기 집단이 추구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흑심과 속셈이 보일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 뉴스에서 보니

집회를 이용하여

사전 선거 운동을 하는 것 때문에

선관위로부터 고발당한 것도 보았다.

자신의 욕심과 흑심이 드러난 셈이다.

그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치 색깔, 프레임에 갇혀서

그가 하는 모든 행동들을 정당화 시키며

대리 만족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을 끌어내리려고

밤낮없이 기도하며 집회하는 것 때문에

청와대 주변 동네 사람들에게까지

심각한 민폐를 끼치고 있는 그 무모한 열심을

먼저 이 사회에 빛이 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교회들의 죄악을 회개하는 일에

그리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여

세상 사람들에게서 조차

가장 개혁이 필요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는

우리 한국 교회를 정화하는 일에 쏟아주면 좋겠다.

 

예수님의 거룩한 분노와 관련한 글을 쓰다 보니

본의 아니게 또 정치와 관련된 글이 되었다.

이런 글을 올리면 싫어하는 분들이 있는 것을 알지만

오늘의 말씀이 보여주는 예수님의 거룩한 의분과 용기를

나도 억만 분의 일이라도 추종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린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예수께서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을 바꾸어 주는 환전 상인들이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둘러엎으시고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이 광경을 지켜본 제자들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시 69:9)

라고 한 성경 말씀을 기억하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이런 일을 할 자격이 네게 있다는)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자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 말씀하신 것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셨기 때문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까지 모든 것을 다 아셨음이니라.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이 장사로 더럽혀진 성전을 청결케 하신다.

유월절을 맞아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셨다.

성전 안에는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환전을 하는 상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을 이용해 자기들의 탐욕을 채우려고 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내쫓으시며 아버지의 집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고 외치셨다. 비폭력을 가르치셨고 몸소 섬김을 가르치셨지만 유일하게 폭력을 행사하신 곳이 성전청결 사건이다.

분노하여 상인들을 내쫓으시는 예수님에게 유대인들은 무슨 자격으로 그렇게 하느냐며 표적을 요구했다.

그때 예수님은 성전을 헐면 사흘만에 다시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건물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실 자기 몸을 가리켜 성전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구약의 성전과 제사는 메시아의 온전한 제사를 예표하는 것으로 십자가에서 구속의 역사가 성취됨으로써 목적과 기능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성전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 또한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더욱 성경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게 된다.

믿는 사람들은 말씀을 기억했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표적을 구하게 된다.

성도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세상방식을 거부하고 오직 말씀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신약시대의 성전은 성도 자신이다.

성전청결 사건은 성도가 자기 몸을 거룩하게 지키고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산제사를 드려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우리는 걸어 다니는 성전으로서 말씀을 따라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 때에 솔로몬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 하고

얼굴을 돌이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 그 때에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서 있더라.(왕상 8:12~14)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왕상 8:29~30)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시 69: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마 16:17~20)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눅 12:15~1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6~8)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