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3:10~18>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받는 약속
오늘의 찬송(새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 서)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율법과 약속
15.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말씀 묵상>
10. 율법의 행위에 근거해 사는 사람들은 모두 저주 아래 있습니다. 기록되기를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항상 지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다 저주를 받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신27:26
11. 하나님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율법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합2:4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을 행하는 사람은 율법 안에서 살리라”고 했습니다. 레18:5
1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시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기록되기를 “나무에 달린 사람마다 저주를 받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신21:23
14. 이는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 사람에게 미치게 하고 우리도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율법과 약속
15. 형제들이여, 내가 사람의 예를 들어 말합니다. 사람의 언약이라도 한번 맺은 후에는 아무도 그것을 무효로 하거나 덧붙일 수 없습니다.
16.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약속을 주실 때 여러 사람을 가리켜 “자손들에게”라고 하지 않으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에게”라고 하셨는데 이는 곧 그리스도십니다.
17.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하나님에 의해 미리 정해진 언약을 무효화해 그 약속을 취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8. 만일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약속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유업을 주셨습니다.
<오늘의 말씀 요약>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하니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으신 것은 우리가 그분을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입니다. 이는 오래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율법의 저주를 한 몸으로 막아내신 예수님과 나
▼ 갈라디아서 3:10-18
묵상내용(그루터기 선교회)
제2,3차 선교여행을 통해 자신의 고향 길리기아 다소를 포함하고 있는
갈라디아 지방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웠던 바울은
이들이 어떤 거짓 교사들의 꼬임에 빠져 복음이 주는 자유를 버리고
율법주의 신앙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호소하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써 보내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한 열심이라고 하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바울 자신도
율법에 대하여 두 손 들고 항복했던 그것을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들인 갈라디아 교회가 복음이 주는 축복을 버리고
율법의 멍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았을 때
그의 마음이 얼마나 통분한 심정이 되었는지... 이 글 속에 녹아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율법의 저주를 담고 있는 십자가”라는 관점에서
다시 한 번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4:13]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실 때 칼로 목 베임을 당하는 참수형이나
돌에 맞아 죽는 것이나 목 메달려 죽는 교수형 같은 사형방법이 아니라
굳이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셔야 했던 것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우리[내]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은 표시였다는 것을
신명기 21:23절의 말씀을 근거로 삼아 이 편지 글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신21:23]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내가 받을 저주를 그 한 몸으로 다 받아내시고
저주를 차단시키심으로 이방인이었던 나라도 예수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축복의 상속자가 되며 예수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은 자 된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14]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씨)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자니라 [갈3:29]
묵상적용
언젠가 우리 교회 청년이 결혼하게 되어 신부가 다니던 교회를 떠나
우리 교회로 오게 되었는데 그 신부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신부 측 교회 목사님(?)이 떠나는 신부에게 축복은 고사하고
심지어 협박성 저주까지 퍼부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축복이 아니라 저주의 말을 뒤로하고
결혼식장에 선 신부의 눈에서 눈물을 보았을 때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또 언젠가는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우연하게 내 뒤에 앉은
두 여성[아주머니]의 소근거리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는데
한 아주머니가 말하기를 교회를 옮기고 싶은데
목사님이 교회를 떠나는 자들에게 하신 저주가 무서워서
못 옮긴다는 말을 하자 방금 전까지도 그렇게 많은 말을 쏟아내던
옆의 친구가 이 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저주성 말에 대해 얼마나 마음이 약한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언젠가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는 책이
기독교 서점가를 강타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는 것에 예민한 관심을 보이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준엄한 율법의 잣대 앞에서 설 곳이 없는 나를 위해
그 무서운 저주를 한 몸으로 막아내시고
나를 저주에서 속량하여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이런 저주 성 말들이나 협박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들인지를 깨닫습니다.
율법에 속하여 스스로 율법의 저주에 매이지 말라는
사도적 교훈을 마음 깊이 받아 드리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나에게 주어진 자유와 해방을 마음껏
누리는 신앙과 삶이되기를 이아침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다짐합니다.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준엄한 율법의 잣대 앞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고
영원한 저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에게
주님의 십자가로 이 모든 저주를 다 풀어주시고
참 자유 주셨으니
주님께서 주신 이 자유와 축복을
창공을 나는 새들처럼
충만히 누리는 신앙과 삶이 되게 하소서 - 아멘 -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항상 지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신 27:26)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어느 누구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합 2:4) 하였음이니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레 18:5)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자가 되셔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신 21:23)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창 13:15),
그 한 사람이 곧 그리스도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그것은 절대로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율법 자체는 거룩한 것이지만 죄를 드러나게 하는 것으로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저주 아래 놓이게 된다.
병원에서 하는 검진은 질병을 밝혀내기 때문에 검진 결과 환자로 판정되는 것이지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같다.
몸속에 병이 있어도 있는 줄 모르고 살다가 검진을 통해 환자임이 드러나는 것처럼 율법이 오기 전에는 죄를 죄로 알지 못했는데 율법이 와서 우리가 죄인임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병원의 진찰을 통해 질병이 확인 되었으면 의사와 약을 통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만병의 의사이신 예수님은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치료를 하신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대신해서 그 율법의 저주를 다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지키거나 선행을 통해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이루어가도록 도와주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열방을 살리려고 하는 계획을 이루어 가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이니 우리를 통해 이루시는 것이다.
우리 모두 열방은 살리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한 것이 율법을 주신 때보다 430년이나 앞선 일이기 때문에 율법이 훨씬 이전에 주어진 약속을 깨뜨릴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믿고 의롭게 된 사람으로서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유지하고 열방을 살리는 복된 사람으로 자라가길 소망합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 21:22~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
'말씀 묵상(갈라디아서,에베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년10월25일(금) (갈 4:1~11) 율법의 종에서 하나님 아들로 (23) | 2024.10.22 |
---|---|
2024년10월24일(목) (갈 3:19~29) 율법의 역할은 믿음이 올 때까지 (38) | 2024.10.21 |
2024년10월22일(화) (갈 3:1~9) 믿음으로, 성령으로 살아가는 성도 (14) | 2024.10.19 |
2024년10월21일(월) (갈 2:11~21) 누구든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음 (12) | 2024.10.18 |
2024년10월20일(일) (갈 2:1~10) 복음 안에 자유를 지켜 내는 성도 (23) | 2024.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