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4:1~11> 율법의 종에서 하나님 아들로
오늘의 찬송(새 284장 오랫동안 모든 죄 가운데 빠져)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염려하다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말씀 묵상>
1. 내가 또 말합니다. 상속자가 어린아이일 동안에는 비록 모든 것의 주인이지만 종과 다름이 없고
2. 아버지가 정해 놓은 때가 되기까지 그는 후견인과 재산관리자 아래 있습니다.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린아이였을 때는 세상의 초보적인 것들 아래서 종노릇했습니다.
4. 그러나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습니다.
5. 이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아들의 신분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6. 여러분이 아들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속에 보내셔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은 더 이상 종이 아니고 아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아들이면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상속자입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에 대한 염려
8. 그러나 전에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했지만
9. 이제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아시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여러분은 다시 무력하고 천박한 초보적인 것들로 되돌아가 또다시 그것들에 종노릇하려는 것입니까?
10. 여러분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잘도 지킵니다.
11. 내가 여러분을 위해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렵습니다.
<오늘의 말씀 요약>
유업을 이을 자가 어릴 때는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듯이, 우리도 세상의 초등 학문 아래서 종노릇했습니다. 그러나 때가 차자,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신분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 종노릇하려 한다면 이는 어리석습니다.
받은 은혜와 축복을 쓸어버리지 않기
▼ 갈라디아서 4:1-11
묵상내용(그루터기 선교회)
[뜻으로 읽는 오늘의 말씀]
바울은 율법과 복음이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잘 설명하기 위해
그가 이 편지를 쓸 당시 로마시대의 풍습을 배경으로 삼아서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는 주인의 아들에 대해 설명합니다.
주인의 유업을 잇게 되는 아들이 아직 어렸을 적에는
주인의 후견인이나 청지기 아래서 훈육을 받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진행에 있어서
인간의 구원자로서 그의 아들을 보내시기 전에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알고
훗날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시게 될 때에
그 은혜의 부요함을 깨달아 알게 되도록
율법 시대가 불가불 필요하였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4:1-3]
따라서 마침내
때가 차매----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진행에서 아들을 보내시는 최적기]
하나님이----- [구속역사를 계획하시고 진행시키시는 주체가 되시는 분]
그 아들을 보내사---[ 하나님의 구속사를 성취시키러 오신 성자 예수님]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강조함]
울법 아래에 나게하신 것은--- [율법 시대를 통과하게 하심 ]
-----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4:4]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인간이 백번 천번 만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이 율법을 인간의 몸으로 지키신 것 뿐 아니라
이 율법의 잣대 앞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우리를 위해
율법의 형벌로써 받아야할 저주를 그 한 몸에 다 담당하게 하시고
우리가 속량되게 하심으로 [죄의 값이 치뤄진 것이 되게 하심으로]
이처럼 아들을 희생해서 까지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의 명분을 얻게 하셨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들의 명분을 얻는 것 뿐 아니라 실제로 이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 발생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 가운데 그의 성령을 보내사
이전에 죄인이었고 진노의 자식들이었던 우리가 이제는 스스럼없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신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4: 6]
그러고 보면 인간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성 삼위 하나님께서 어떻게 입체적으로 개입하셨는가를 보게 되는데
성부 하나님께서는 인간 구원을 계획하시며 진행하시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보냄을 받아
인간의 죄와 비참 가운데 동참되는 율법 아래 성육신 하셨고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치뤄내신 율법의 댓가로서 십자가 희생을
각 사람의 마음에 임하여 내주하시며 적용하시어
이 놀라운 복음의 소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되게 하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성 삼위 하나님께서 총체적이며 입체적으로 개입하시어
더 이상은 주인의 후견인이나 청지기 아래 있는 것같은
율법의 종이 아니요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자녀들이 되게했는데
왜 너희는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율법주의]로 돌아가려고 하며
왜 너희는 하나님의 상속자들답게 행동하지 않느냐고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통렬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4:9-11]
묵상적용
어린 시절 한 동리에 사는 집안 친척 가운데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찍 죽게 된 새댁이 있었습니다.
집안사람들이 서로 수군거리며 말하기를
결혼식 다음 날 눈이 많이 내렸는데 어린 신부가 그것이 복인 줄도 모르고
이른 아침 마당에 나가 그것을 다 쓸어버리더니 비명에 갔다는 말을 하기에
어린 마음에도 일찍 비명에 간 그 새댁이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미신적인 이야기여서 염두에 둘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말씀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의 그 때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자신의 고향이 있는 길리기아 다소를 비롯한 갈라디아 지방에
주의 복음을 전하여 산고 끝에 세워진 이방인 갈라디아 교회가
하나님께 서 부어주신 이토록 많은 은혜와 축복을 알지 못하고
거짓 교사들의 꼬임에 빠져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율법신앙에 떨어진 것을 보고
통분한 마음으로 이 편지를 써보내는 바울의 마음이
곧 주님의 마음이 되어 이아침 마음 깊이 닿아집니다.
율법의 잣대 앞에서 피할 수 없는 진노와 심판을 벗겨주시기 위해
성 삼위 하나님께서 총체적으로 개입하시어 이루어주신
이 놀라운 구원의 은총과 축복의 선물을 다 쓸어 없애버리고
다시 율법 신앙으로 돌아가려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보면서
이것이 또한 나의 모습은 아닌지 혹은
이것이 우리 교회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려하며
이미 받은 은혜와 축복을 알지 못해서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주의로 회귀하는 것을 보며
다시 복음을 가르치고 있는 바울의 심정과 오늘의 말씀을 보면서
내가 이미 받은 복음의 신앙위에 내 자신을 견고히 세워야 할 것과
더불어 이 복음을 이미 들은 사람들에게도
이 복음은 다시 거듭해서 반복적으로 전해져야하는
가장 귀한 하나님의 말씀 인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드립니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상속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때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는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그러나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또한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그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아시는 자가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것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年)를 삼가 지키고 있으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귀한 자녀가 된 성도는 율법의 종으로 매이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바울은 당시 로마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던 후견인 제도를 들어 율법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아버지가 정해 놓은 때까지 어린 아들은 후견인으로 세워진 종의 돌봄을 받아야 했는데 우리도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율법의 규례에 의해 삶이 제한받고 인도함을 받았다는 것이다.
마치 해가 떠서 날이 밝을 때까지 어두움 가운데 등불이나 촛불을 켜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아들이 성년이 되면 더 이상 후견인인 종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고 오히려 주인으로서 그 종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것처럼 예수님의 복음을 만나면 과거 율법에 묶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이제는 종이 아니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아들이며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받을 상속자가 되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제 아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율법의 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
더 이상 과거의 상태로 돌아가 종노릇할 필요가 없이 은혜 안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하며 이제는 사람을 의식하거나 율법에 따라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봉사나 헌금이나 맡은 직분에 따른 충성도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되는 것이다.
율법이 우리를 종으로 삼았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는 율법의 종노릇했던 상태로 돌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며 감사하고, 기쁨으로 순종하며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 8:34)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4~17)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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