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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열왕기상,하,역대상,하)

2024년7월11일(목) (왕하 9:27~37) 하나님을 대적한 자의 심판과 죽음

by 방일 2024.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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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9:27~37> 하나님을 대적한 자의 심판과 죽음

 

 

오늘의 찬송(새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유다 왕 아하시야가 살해되다

27.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그 뒤를 쫓아가며 이르되 그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그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28.  그의 신복들이 그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서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29.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십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이세벨 왕후가 살해되다

30.  예후가 이스르엘에 오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31.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이르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니
32.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을 향하고 이르되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니 두어 내시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33.  이르되 그를 내려던지라 하니 내려던지매 그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더라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밟으니라
34.  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이르되 가서 이 저주 받은 여자를 찾아 장사하라 그는 왕의 딸이니라 하매
35.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그의 손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
36.  돌아와서 전하니 예후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
37.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하였더라.

 

 

<말씀 묵상>

 

 

27.  유다 왕 아하시야는 이 광경을 보고 벳하간으로 가는 길로 도망쳤습니다. 그러자 예후는 아하시야를 쫓아가며 “전차를 타고 있는 저자도 쏴 죽여라!” 하고 소리쳤습니다. 전차를 타고 도망가던 아하시야는 이블르암 근처 구르로 올라가는 길에서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아하시야는 므깃도까지 도망쳐 므깃도에서 죽었습니다.
28.  아하시야의 신하들은 아하시야의 시체를 전차에 싣고 예루살렘으로 데려와 그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 그의 무덤에 묻어 주었습니다.
29.  아하시야는 아합의 아들 요람 11년에 유다 왕이 됐습니다.

이세벨이 죽음

30.  그 후 예후는 이스르엘로 갔습니다. 이세벨은 이 말을 듣고 눈에 화장하고 머리를 매만진 뒤 창문으로 내다보았습니다.
31.  예후가 성문으로 들어오자 이세벨이 물었습니다. “자기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야, 평안하냐?”
32.  그러자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문을 쳐다보고 소리쳤습니다. “누가 내 편이 될 것이냐? 누구냐?” 두세 명의 내시들이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33.  예후가 말했습니다. “저 여자를 던지라!” 그러자 내시들이 이세벨을 내던졌습니다. 이세벨의 피가 벽과 말들에 튀었고 예후는 발로 이세벨의 시체를 짓밟았습니다.
34.  예후가 들어가 먹고 마시며 말했습니다. “가서 저 저주받은 여자를 찾아서 묻어 주라. 그 여자가 왕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35.  사람들이 이세벨을 묻어 주려고 나가 찾아보니 남은 것은 해골과 발과 손바닥뿐이었습니다.
36.  그들이 돌아와 예후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후가 말했습니다. “과연 여호와께서 자기 종 디셉 사람 엘리야를 통해 하신 말씀대로구나. ‘이스르엘 땅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 것이다.
37.  이세벨의 시체가 이스르엘 땅에서 밭에 거름같이 될 것이니 여기 이세벨이 누워 있다고 말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오늘의 말씀 요약>

 

 

유다 왕 아하시야가 요람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나 예후의 추격을 받아 므깃도에서 죽습니다. 치장을 하고 예후를 맞이한 이세벨은 내시들에 의해 창밖으로 던져져 죽습니다. 장사하려 그의 시체를 찾으나 두골과 발, 손밖에 없습니다. 이는 엘리야를 통해 하신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돌아와서 전하니 예후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하였더라.

 

 

 

내 죽는 날의 초상을 그리며

 

 

▼ 열왕기하 9:27-37

 

묵상내용(그루터기 선교회)

 

어제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컨퍼런스로

집에 돌아가기가 어렵게 되어

성북동 누님 집에서 잠을 청하고 이른 아침

집을 나서기 전에 묵상 글을 올리려다 보니

너무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글이 된 것 같아

지하철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글에는

말씀이 나에게 던져주는 화두를 붙잡고

그 글속에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께 향한 나의 신학적인 관점과

나의 인생철학이 함께 녹아지고 담겨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터인데

오늘 아침의 묵상 글은 너무 쉽게 써졌고

너무 단편적인 글이 된 것 같아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글을 올린다.

 

<내 죽는 날의 초상을 그리며>

 

오늘 아침 출근길로 복잡한 9호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숨쉬기도 거북스러운

지하철 안에서 오늘의 본문을 생각해보면서

내가 다시 붙잡게 되는 말씀의 화두는 "죽음"의 문제인데

 

이스라엘 왕과 유다의 왕 그리고 이 왕들에게 우상숭배와

그에 따른 죄악을 조장한 악녀 이세벨의 죽음을 보면서

내 죽음의 날에 나는 어떤 죽음의 초상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나 주님께 갈 것인가 하는 주제이다.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예후의 반역에 겁을 집어먹고 병거를 타고 도망치다

뒤에서 쏘는 화살이 염통을 꿰뜷고 나와 죽게 되었고

 

남 왕국 유다의 왕 아하시야는

자기와 외사촌간인 여호람을 병문안 갔다가

자신도 예후에게 쫓겨서 므깃도까지 도망갔다가

그 역시 병거를 탄 채 죽임을 당했으며

 

우상 숭배 죄악의 조장자이며 원흉인 이세벨은

두 왕을 처단하고 지금 자신을 처단하러 온

야후의 칼날이 지금 자신을 향하고 있는데도

요란한 화장으로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다가

졸지에 창밖으로 던져져서

몸의 오장육부가 터져 나오고 피투성이가 되어 죽었으니

과연 엘리야의 예언처럼 저주 받은 자의 죽음이 되었다.

 

생명의 삶 오늘의 말씀 주제로 올려진 글처럼

과연 한 인간의 죽음은 그 자체로써

자신이 살아온 삶을 보여주는 거울이 되는 데

 

그렇다면 나도 언제가는 이 세상을 작별하고

주님께 부름 받아갈 그 날에

나는 나의 최후를 어떤 모습으로 남기고 갈 것인지

내 죽는 날의 초상을 미리부터 생각하며 기도하게 된다.

 

말기 암으로 투병하는 중에도

여기 생명의 삶 게시판에 은혜로운 묵상 글을 올리다가

주님 앞으로 간 고 김종성 목사는

주님께서 주신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침상 머리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로 갔는데

 

그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이 너무나 숭고하여

나는 그의 책을 출판하게 된 다섯 권 모든 표지에

그의 마지막 기도하는 모습을 표지 컷으로 올렸었다.

 

나는 오늘의 말씀에서 보여주는 여호람이나 아하시야 처럼

그들이 천하를 호령했던 왕들 이었어도

하나님의 심판에 바람같이 날리는 검불처럼 되어서

좇기는 자와 도망자가 되어서 비참하게 죽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이세벨처럼 자신의 최후가 목전에 이르렀는데도

자신의 살아온 날에 대한 아무런 후회나 반성도 없이

여전히 자신이 살아왔던 지난날들처럼

음행과 술수의 눈을 그리며 머리를 꾸미다가

창밖으로 내던져 시체도 수습하지 못하는

저주받은 자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족장들처럼

침상 머리에 머리를 기대고

주님께 경배하는 자세로 가고 싶으며

 

혹은 침상에 머리를 묻고

내 영혼을 받아 주시기를 간구하는

경건한 기도하는 자세로 가고 싶다.

 

그러나 내가 주님 앞에 어떻게 바라던

내 죽음의 날과 그 시는

생명의 주관자이신 주님 손에 달린 것이니

나의 죽음이 어떤 형태의 죽음이 되었던지

내 죽는 날의 초상이 부끄럽지 않기를 기도하며

 

죽음의 순간에 주님이 보여주신 영혼의 고백으로써

아버지 내 영혼을 받아 주소서 기도하게 되는 것과

또 주님의 사도 바울이

임종에 가까이 이르러했던 고백으로써

말로 다할 수 없는 영원한 행복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문턱으로서 죽음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음으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나뿐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유다 왕 아하시야는 이 광경을 보고 (벳하간이라 부르는) 동산의 정자 길로 도망하자,

예후가 추격하며 “저 자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하고 외쳤습니다.

병거를 타고 도망하던 아하시야는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길에서 예후의 부하들의 칼에 찔려 부상을 당했고,

므깃도까지 도망하였다가 거기에서 죽었습니다.

이하시야의 신하들은 아하시야의 시체를 그의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와서

다윗 성에 있는 그의 조상들의 무덤에 묻어 주었습니다.

아하시야는 아합의 아들 요람이 왕이 된 지 11년째 되던 해에 유다 왕이 되었었습니다.

그 후 예후는 이스르엘로 갔습니다.

이세벨은 그가 왔다는 말을 듣고 눈화장을 하고 머리를 꾸민 뒤 창문으로 바라보다가

예후가 궁궐의 문으로 들어오자 이세벨이 물었습니다.

“자기 주인을 죽인 역적 시므리 놈아! 평안하냐?”

그러자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문을 쳐다보며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하고 소리치니,

두세 명의 내시들이 예후를 쳐다보았습니다.

예후가 말했습니다. “그 여자를 아래로 내던지라.” 그들이 그 여자를 아래로 내던지니

피가 벽과 말에게까지 튀었습니다. 예후는 발로 이세벨의 시체를 짓밟았습니다.

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다가 말했습니다.

“가서 저 저주받은 여자를 찾아다가 장사를 지내 주어라. 어쨌든 왕의 딸이 아니냐?”

사람들이 이세벨을 장사지내 주려고 찾아 나섰으나,

그 여자의 해골과 손발밖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예후에게 말하자 예후가 말했습니다.

“과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엘리야를 통해 하신 말씀대로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땅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으리라.

이세벨의 시체가 이스르엘 땅에서 밭의 거름처럼 될 것이니,

이것을 보고 그것이 이세벨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하고 말씀하셨느니라.

 

 

 

요람을 죽인 예후는 유다도 같은 심판대상으로 간주하여 도망가는 유다왕 아하시야도 죽이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물들게 한 장본인 이세벨도 죽여서 개의 밥이 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된다.

여호사밧이 아합의 딸을 데려다 며느리로 삼는 정략결혼을 시킨 후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전쟁이 없이 안정되고 아람을 상대하기 위한 동맹체제가 구축된 듯 하지만 영적이 면에서는 이스라엘과 유다는 똑같이 우상숭배에 빠졌고 결과적으로 예후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도 두 가문이 똑같이 받게 된다.

시편 기자가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고 한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사람은 혼자서라면 하지 못할 악한 일을 다른 이들과 함께하면서 군중심리에 따라 무모하게 저지르기도 하고 악한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다른 이들도 그렇게 살지 않느냐고 항변하게 된다.

어차피 혼자 살 수없는 세상이라면 믿음의 사람을 가까이 하면서 좋은 영향을 받고 선한 일을 도모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하나님을 떠날 수도 없어 두 신을 섬기며 살아왔다.

그들은 끊임없이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바알과 아세라를 세우기도 했었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 우리들에게 그렇게 살면 망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수많은 것들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고 성공과 문화라는 이름으로 유혹해도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며 예수님이면 충분하다고 고백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악을 행하는 자의 결론은 멸망이기 때문이다.

이세벨의 끔찍한 마지막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말씀을 무시하며 내 마음대로 사는 데도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일이 어쩌면 가장 무서운 징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길을 가는 날들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1~2)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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