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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열왕기상,하,역대상,하)

2024년7월10일(수) (왕하 9:14~26) 죄악의 장소에서 이루어진 심판

by 방일 2024.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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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9:14~26> 죄악의 장소에서 이루어진 심판

 

 

오늘의 찬송(새 253장 그 자비하신 주님)

 

 

이스라엘 왕 요람이 살해되다

14.  ○이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곧 요람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아람의 왕 하사엘과 맞서서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
15.  아람의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울 때에 아람 사람에게 부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던 때라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알리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니라
16.  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요람 왕이 거기에 누워 있었음이라 유다의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보러 내려왔더라
17.  이스르엘 망대에 파수꾼 하나가 서 있더니 예후의 무리가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하니 요람이 이르되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어 맞이하여 평안하냐 묻게 하라 하는지라
18.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물러나라 하니라 파수꾼이 전하여 이르되 사자가 그들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19.  다시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었더니 그들에게 가서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를 따르라 하더라
20.  파수꾼이 또 전하여 이르되 그도 그들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가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 하니
21.  요람이 이르되 메우라 하매 그의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의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22.  요람이 예후를 보고 이르되 예후야 평안하냐 하니 대답하되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하더라
23.  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하니
24.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겨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화살이 그의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그가 병거 가운데에 엎드러진지라
25.  예후가 그의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가져다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의 아버지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그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2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제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의 시체를 가져다가 이 밭에 던질지니라 하는지라.

 

 

<말씀 묵상>

 

 

예후가 요람과 아하시야를 죽임

14.  그리하여 님시의 손자이며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는 요람을 반역하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때 요람과 온 이스라엘은 아람 왕 하사엘과 맞서 싸워서 길르앗 라못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15.  그러나 요람 왕은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우다가 아람 사람에게 부상당한 것을 치료하기 위해 이스르엘로 돌아온 상태였습니다. 예후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내 뜻을 좋게 여긴다면 아무도 성 밖으로 나가 이스르엘에 이 소식을 전하러 가지 못하게 하라.”
16.  그러고 나서 그가 전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달려갔습니다. 요람이 그곳에 누워 있었고 유다 왕 아하시야가 그를 만나러 내려와 있었습니다.
17.  이스르엘 망대를 지키는 파수병이 서 있다가 예후의 군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외쳤습니다. “군대가 보입니다.” 요람이 명령했습니다.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라. 그들을 만나 ‘평안의 소식이냐?’ 하고 묻게 하여라.”
18.  한 사람이 말을 타고 나가서 예후를 만나 물었습니다. “왕께서 ‘평안의 소식이냐?’하고 물으십니다.” 예후가 대답했습니다. “네가 평안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뒤로 가 나를 따라라.” 파수병이 보고했습니다. “보낸 사람이 그들에게 가서 돌아오지 않습니다.”
19.  그리하여 왕은 다른 사람을 말에 태워 보냈습니다. 왕이 보낸 사람이 그들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왕께서 ‘평안의 소식이냐?’ 하고 물으십니다.” 예후가 대답했습니다. “네가 평안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뒤로 가 나를 따라라.”
20.  파수병이 보고했습니다. “보낸 사람이 그들에게 가서 이번에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을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 같습니다. 미친 사람처럼 몰고 있습니다.”
21.  요람이 명령했습니다. “내 전차를 준비하여라.” 전차가 준비되자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자기 전차를 타고 나갔습니다. 그들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땅에서 예후와 마주하게 됐습니다.
22.  요람이 예후를 보고 물었습니다. “예후야, 평안의 일이냐?” 예후가 대답했습니다. “네 어머니 이세벨이 들여온 저 많은 우상들과 마술들이 있는데 어떻게 평안하겠느냐?”
23.  요람이 뒤돌아서 도망치며 아하시야에게 소리질렀습니다. “아하시야여, 모반입니다.”
24.  그러자 예후는 힘껏 활을 당겨 요람의 두 어깨 사이를 쏘았습니다. 화살은 요람의 가슴을 뚫었고 요람은 전차 안에서 나뒹굴었습니다.
25.  예후가 자기의 전차 사령관인 빗갈에게 말했습니다. “요람의 시체를 들어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져라. 너와 내가 함께 전차를 타고 요람의 아버지 아합의 뒤를 따라다닐 때 여호와께서 그에 대해 예언하신 것을 기억하여라.
26.  ‘나 여호와가 말한다. 어제 내가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보았다. 나 여호와가 말한다. 내가 이 땅에서 네게 갚아 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여호와의 말씀대로 요람의 시체를 들어 그 땅에 던져라.”

 

 

<오늘의 말씀 요약>

 

 

요람을 배반한 예후가 부상당한 요람을 만나러 이스르엘로 갑니다. 요람은 한 무리가 오는 것을 듣고 한 사람을 보내 평안하냐 묻게 하는데, 그 사람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요람과 아하시야가 예후의 반역을 알아채고 도망하나, 요람은 예후의 화살에 맞아 죽고 그 시체가 나봇의 토지에 던져집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제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의 시체를 가져다가 이 밭에 던질지니라 하는지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대의와 명분을 붙잡은 사람

 

 

▼ 열왕기하 9:14-26

 

묵상내용(그루터기 선교회)

 

어제 묵상글에서는 "하나님의 역사 심판의 칼날은 어디로 향하는가?"를 주제로 썼는데 오늘의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심판 도구가 되어 이스라엘의 역사를 거의 반 백년[50년]가까이 통치해온 오므리 왕가 - 아합의 집을 평정하고 역사의 새 장을 열게되는 "예후"라는 사람에 대해서 쓰게 된다.

 

이 사람 예후가 처음 이름이 등장되는 곳은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죄악을 고발하기 위해 호렙산으로 가서 모세가 섰던 자리 "그 동굴"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구상하시는 이스라엘의 역사 운명에 대해서 언급하시는 말씀 중에 처음 등장하게 되는데 [왕상19:16]

이스라엘 우상숭배의 죄악을 척결하고 새 역사를 쓰게 될 인물로서 나는 이 사람의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 왜 이스라엘의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이 사람인가(?)하는 의구심을 가졌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왜 이 사람인가에 대한 의문이 풀려지며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일에 이 나라의 일꾼된 사람들의 각각의 면면을 잘 아시며 각각의 준비된 인격의 그릇과 성격대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반백년 동안 막강 권력을 휘둘렀던 아합의 집을 송두리채 뒤집어 놓고 새 역사를 쓰게되는 이 사람 "예후"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인가.(?)

 

물론 이 사람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접근하며 쓸만한 이야기가 많겠지만 하나님의 나라로서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의 길로 몰아넣은 오므라 왕가를 심판하고 역사의 물줄기 바로 돌려놓은 개혁가 "예후"의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된다.

 

1. 거룩한 배반[개혁]의 사람 예후 [9:14]

 

물론 배반이라는 말은 항상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엘리사가 보낸 제자를 통해 기름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심판 집행을 전달받았을 때 그동안 악한 왕 아합의 하수인이 되어 함께 죄악의 동류가 되었던 그가 아합의 아들 대에 이르러서까지 계속 악의 하수인이 되어 살아가는 것을 역겹게 생각하고 자기 주군을 향하여 반기를 든 것은 배반이라기보다 용기이며 더 이상 자신의 인생을 악의 하수인으로 살기를 거부하는 거룩한 몸부림이자 자기 혁명이며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개혁의 시발이 되었다.

 

이러한 그의 심정은 그가 새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심판 집행을 위해 이스르엘에 있는 왕의 여름 별장을 향해 미친듯이 말을 몰아가서 마침내 왕을 만나고 도망가는 왕의 등을 향해 활살을 쏘아 염통을 꿰뚫어 죽였을 때 그의 부하 장관으로 대동했던 빗갈에게 하는 말 속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예후가 그의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가져다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의 아버지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그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9:25]

 

아합과 아합의 그의 아들 대에 이르기까지 두 대에 걸쳐 악의 가담자가 되어 좇았던 자신을 반성하며 자신의 부관 빗갈에게 하는 말 속에서 그의 반성과 새로운 결단을 보며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의 준행자가 되고 있는 변화를 본다.

 

악의 동류가 되고 하수인이 되어 떨어지는 콩고물을 얻어먹고 사느니 그런 자리를 박차고 자신의 주군을 배반해서라도 그 세계를 떨쳐 나오고자했던 예후의 그 과감한 성격과 결단성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고 그대로 사용하셨다.

 

오늘 내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빌어먹는 것 때문에 악의 동료가 되고 과감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은 없는지 ...이 아침 예후를 통해 나를 돌아본다.

 

주님 !

 

죄의 종이 되고 마귀의 하수인처럼 되어 살아가는

모든 굴종과 비굴의 멍에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과감히 나 자신으로부터 혁명과 개혁을 이루게 하옵소서.

 

묵상적용

 

2. 기밀유지와 보안에 철저한 사람 [9:15]

 

예후는 엘리사가 보낸 제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심판 집행을 전달받았을 때 그는 자기의 주군을 배반하게 되는 이 무서운 반란의 중심으로 내몰리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기 보다 이 일이 제대로 성사되기 위해서 우선 먼저 이 기밀이 누설되거나 왕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성을 봉쇄하고 단 한사람도 성에서 나가지 못하게 방비하며 자신이 친히 병거를 몰아서 자신의 주군이 전투에서 입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여름별장으로 내려간 이스르엘 궁을 향해 말을 몰아갔다.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알리러 가지 못하게 하라[9:15]

 

모름지기 큰일을 도모하고 이루려고 하는 사람의 첫 번째 관건은 그 일이 이루어지기 까지 철저한 기밀을 유지하고 보안을 지켜야하는 것인데 이 사람 예후에게서 이러한 리더십의 전형을 보게 되는 것 같다.

큰일을 도모하고 성취하기를 바라는가 ..... 그렇다면 그 일이 성사되기까지 기밀이 노출되지 않도록 입단속부터 잘하고 기밀유지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을 이 아침 귀한 영적 교훈으로 받아 드린다. 왜냐하면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마귀는 항상 하나님의 큰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곳에 귀를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말씀에서 대의와 명분을 붙잡는 사람 [9:26]

 

예후가 아무리 강심장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왜 그가 자기 주군을 향해 반기를 드는 일에 두려움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로 하여금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대의적 명분을 갖게 하고 용기를 내어 과감히 일어서게 한 것은 그가 엘리사가 보낸 제자가 전달해준 말씀과 또 이전에 그가 아합의 부하로 있었을 때 자신의 귀로 들었던 엘리야의 심판 메시지를 기억했기 때문이다.

 

예후가 그의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가져다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의 아버지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그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9:25]

 

큰일을 앞에 놓고 떨리는 사람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것은 그 무엇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 그 이상은 없다는 것을 이 사람 예후에게서 발견하게 되며 이것은 또한 오늘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할 때 가져야하는 자세이다.

 

주님 !

헛된 야망이 나를 부추기지 않게 하시고

주의 말씀에서 내가 대의와 명분을 얻으며

 

내 마음에 불을 일으키는 주의 말씀으로

내가 힘을 얻고 용감할 수 있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님시의 손자이며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습니다.

그때 요람은 아람 왕 하사엘을 인하여 길르앗 라못을 지키려고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우다가

부상당한 것을 치료하기 위해 이스르엘로 돌아온 상태였습니다.

예후가 말했습니다. “(내가 왕이 되는 것이) 너희 뜻에 합당하다면,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이 소식을 전하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나서 예후는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갔습니다.

요람은 그곳에 병으로 누워 있었고,

유다의 아하시야 왕은 요람을 문병하려고 그곳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망대 위에 서 있는 파수꾼이

예후의 군대가 오는 것을 보고 “웬 부대가 오고 있습니다.”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요람이 말했습니다.

“한 사람을 말을 태워 보내 그들을 만나 평화의 일로 오는 것인지를 묻게 하라.”

그리하여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예후를 만나 물었습니다.

“왕께서 친구로 오는 것인지를 물으라고 하시나이다.”

그러자 예후가 말했습니다.

“평화의 인인지 아닌지 네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내 뒤를 따르라.”

파수병이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알아보러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그리하여 왕이 다시 한 사람을 말을 태워 보내었더니 그가 가서 말했습니다.

“왕께서 평화의 일로 오는 것인지를 물으라고 하시나이다.” 예후가 대답했습니다.

“평화의 일인지 아닌지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내 뒤를 따르라.”

파수병이 보고했습니다. “알아보러 간 자가 이번에도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그런데 미친 듯이 말을 모는 모습이 님시의 손자 예후 같습니다.”

요람이 명령했습니다. “병거를 준비하라.”

병거가 준비되자 이스라엘 왕 요람과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자기의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만나러 나가서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났습니다.

요람이 예후를 보고 물었습니다. “예후야! 평화의 일로 오는 것이냐?”

예후가 대답했습니다.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도 많은데

어찌 평화로울 수 있겠느냐?”

요람이 뒤돌아서 급히 도망치며 아하시야에게 소리 질렀습니다.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그러자 예후가 힘껏 활을 당겨 요람의 등을 겨누어 쏘자,

화살이 그의 가슴을 꿰뚫어서 나왔고, 요람은 병거 안에서 나뒹굴었습니다.

예후가 자기의 장관 빗갈에게 말했습니다.

“요람의 시체를 들어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병거를 타고 요람의 아버지 아합의 뒤를 따라다닐 때

여호와께서 그에 대하여 예언하신 것을 기억하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제 내가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 땅에서 네게 그대로 갚으리라’ 하셨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요람의 시체를 들어 그 땅에 던질지니라.”

 

 

 

예후는 엘리사의 예언을 전해 듣고 기름부음을 받아 쿠데타의 정당성을 얻었고 엘리야가 예언한 오므리 왕조의 심판자로 행동한다.

중요한 것은 예후의 인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왕 요람은 아람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이스르엘에서 요양 중이었는데 갑작스레 예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중을 나가다 그가 쏜 화살에 목숨을 잃게 된다.

요람은 전혀 예상 못한 가운데 드디어 오므리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도적같이 임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믿거나 말거나, 인정하거나 않거나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도 이와 같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불에 멸망하던 롯의 때, 홍수로 심판받던 노아의 때로 비유를 하시는데 그 순간까지 사람들은 사고 팔고 먹고 마시고 집짓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정신없이 살다 갑작스럽게 만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때를 잘 분별하고 준비해야만 한다.

이스라엘왕 요람이 예후의 활에 맞아 나뒹굴자 시체를 나봇의 밭에 던지라고 하며 아합이 나봇을 죽이고 밭을 빼앗은 죄에 대한 심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고 비참하게 죽임당한 원한을 풀어주시며 무고한 피값을 찾으시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우리는 헛된 평안을 구하고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평안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데서 온다는 것을 다시 확신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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