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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누가,요한복음)

2025년1월15일(수) (요 5:1~18) 안식일에도 이어지는 사랑의 치유 사역

by 방일 2025.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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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1~18>  안식일에도 이어지는 사랑의 치유 사역

 

 

 

 

오늘의 찬송(새 471장 주여 나의 병든 몸을)

 

 

 

 

오래된 병을 고치시다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말씀 묵상>

 

 

중풍 환자를 고치심

1.  그 후 예수께서는 유대 사람의 절기가 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2.  예루살렘의 ‘양의 문’ 근처에는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고 하는 못이 있었는데 그 못 주위는 다섯 개의 기둥이 있었습니다.
3.  여기에는 눈먼 사람들, 다리 저는 사람들, 중풍 환자들 등 많은 장애인들이 누워 있곤 했습니다. [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  주의 천사가 가끔 내려와 물을 휘저어 놓았는데 물이 움직일 때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에 걸렸든지 다 나았습니다.]
5.  거기에 38년 동안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6.  예수께서 그가 거기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그가 이미 오랫동안 앓아 온 것을 아시고 물으셨습니다. “네 병이 낫기를 원하느냐?”
7.  환자가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물이 움직일 때 못에 들어가도록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가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물속에 들어갑니다.”
8.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거라.”
9.  그러자 그가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10.  그래서 유대 사람들은 병이 나은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안식일이니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옳지 않소.”
11.  그러나 그가 대답했습니다. “내 병을 고치신 분이 내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거라’고 하셨소.”
12.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한 사람이 대체 누구요?”
13.  병이 나은 사람은 그분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예수께서는 이미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14.  나중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이 사람을 만나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네가 다 나았구나. 더 심한 병이 네게 생기지 않도록 이제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15.  그 사람은 유대 사람들에게 가서 자기 병을 고치신 분이 예수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을 통해 생명 얻음을 말씀하심

16.  예수께서 안식일에 이런 일을 행하셨기 때문에 유대 사람들은 예수를 핍박했습니다.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
18.  유대 사람들은 이 말 때문에 더욱더 예수를 죽이려고 애썼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을 어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 부르며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요약>

 

 

베데스다 못의 행각에 병을 고치기 위해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병자가 많이 있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보시고 그에게 낫기를 원하는지 물으신 후, 그를 고쳐 주십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고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신 예수님을 죽이고자 합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요한복음 5:1-9(그루터기 선교회)

 

 

[예수님의 동선을 따라가는 오늘의 말씀 이해하기]

 

AD 27 년 공생애를 시작하신 그 해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에서 8개월을 보내시고

사마리아로 가는 길을 지나 가나에 이르렀고[4장]

그 후 갈릴리 대사역에 들어가셨는데

5장에 들어서면서 갈릴리 대사역의 막간을 이용해

다시 한 번 유대인의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

 

이 때가 AD 28년에 있었던 오순절[맥추절]로 보는데

(근거는 4:35절에 넉 달이 지나야 추수 때라고 했기 때문에

당시는 유월절을 지나 50일 째 되는 맥추절기로 보게 된다.)

 

이 예루살렘 방문 길에서 예수님은 가장 먼저

예루살렘 양문 곁에 있는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가신다.

여기서 양문이라고 함은 이 문을 통해

성전 제사의 제수용으로 쓰이는 양들이 들어간 것이고

베데스다라는 연못의 이름은 자비의 집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 많은 지붕이 있는 행각 다섯이 있는 가운데

많은 병자들이 민간 치료 요법에 따라

간헐천에 물이 동하기를 기다렸는데

이는 온천물이 솟아 나오는 때를 기다린 것으로

사람들은 천사가 내려와 물을 휘 젓는 것으로

누구든지 먼저 들어가는 자가 나음을 입는다는

민간 신앙으로 물의 동함을 기다린 것 같다.

 

예수님은 그 곳에서 38년된 병자를 보셨는데

아마 혈기 마른 사람으로 거동이 불편한 것 같으며

그에게 찾아가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자신이 나을 수 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부정적 심리 때문인지

물이 동할 때 나는 거동할 수 없고 도울 사람도 없어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 내 차례는 없다고 푸념하는데

이런 그에게 예수님은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셨고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간 것이다. [5:9A]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암시하듯

이 날은 안식일 이었다고 하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5:9B]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 깊이 닿아지는 단어와 구절은

이 병자가 38년간 거동도 할 수없이 누워 지냈다는 것이고

예수님은 그에게 낫고 싶으냐? 질문하셨고

그의 푸념 섞인 답변이나 믿음에 관계없이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는데

나와는 상관없게 보이는 본문의 단어와 구절과 문맥들이

어느 순간 이것이 나와도 관계가 있는 말씀으로 닿아진다.

 

 

 

왜 하필이면 38년 된 병자일까(?)

불현 듯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불신앙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38년간 광야에서 방황한 세월이 생각난다.[신2:14]

 

그렇지 이 38년이란 것은

이스라엘 출애굽 1세대들의 이야기 이며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또 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지금까지 **년을 살아오면서

여전히 죄악 세상에서 죄 가운데 방황하며

주님 보시기에 38년간 누워 지낸 병자처럼

나의 모습도 그러하지 않은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 지긋지긋한 놈의 죄와 죄성 때문에

그 죄의 굴레에 매여서 나는 38년 된 병인처럼

거동이 불편한 신앙인으로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

 

이어지는 말씀에서 주님은 이 고침 받은 병인을 만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셨는데

결국 이 사람을 38년간 묶어놓았던 것은

죄의 문제이었다는 것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나를 영적 장애자로 만들어

역동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가로막고

38년 동안 광야를 방황한 이스라엘이나

오늘의 말씀에 나오는 이 병인처럼 만드는 죄에 대하여

나는 어떻게 해야 이 숙명적인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가?

 

주님이 말씀하신다.

그것이 불가능하게 보인다고 하여도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여기서 네 자리란

그동안 너를 얽매어 왔으며

너를 누워있게 만들었으며

너를 방황하게 만들었으며

너에게 절망감을 안겨준

그 죄의 자리를 말씀하심이며

그 죄의 자리에서 일어나

이제는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심이다.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하게 보일지라도

일어나 걸어가면

지금까지 나를 얽매였던 것에서

풀려나 자유하게 해주신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선 4장 갈릴리 가나에서

죽어가는 아들을 살려달라던 왕의 신하도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는

행동하는 믿음으로 나섰을 때 기적을 보았는데

오늘의 말씀에 등장하는 이 38년 된 병자 역시

자신이 일어나 걷는 것은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일어나 걸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행동하는 믿음으로 옮겼을 때

그에게 지난 38년은 광야 38년이 되었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새삶이 시작되었다.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오늘 주신 말씀과 관련된 찬양의 후렴을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로 올려드린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으라, 내 너를 도우리.♩? 아멘 -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 요한복음 5:10-18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서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과의 충돌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무모하게 보였다.

 

성전 청결 사건을 통하여

그 누구도 개혁의 목소리 한 번 내지 않았던

종교 기득권 세력들에 대해여 도전했던 것은

그 자체로써 신선한 충격이었고

예수님 자신의 존재를

예루살렘과 온 유대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는데

 

더불어 자신의 적을 만드는 계기도 되었으며

이 때부터 예수님은 위험인물로 주시 되었다.

 

더구나 세례요한의 증거를 받아 등장한 것 때문에

세례요한보다 더 높은 인지도를 받게 되고

백성들이 그에게 몰려 든 것은

기득권 세력들에게 미움과 시기를 촉발시켰고

자칫하면 제 명대로 다 살지 못하고

제거되는 사람처럼 될 위험에 처했기 때문에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아 아직도 할 일이

많으신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이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예루살렘과 유대가 아닌 북쪽 갈릴리에서

초기 사역을 집중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의 초기에

갈릴리 사역에 집중하신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기도 한데

사망과 흑암의 땅 -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지역에 빛을 비추기 위함도 물론이다. [마4:13-19]

 

그러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언제까지 이렇게

갈릴리 사역에만 머무를 수 없음을 아시기에

예수님은 사역의 베이스 켐프는 갈릴리에 두면서도

 

모든 유대인 남자들이 일 년에 3차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명절 기간을 이용하여

자신이 비켜갈 수 없는 위험한 충돌에 자신을

노출시키기로 다짐하시고 실행에 옮기시는데

 

요한복음 5장/6장/7장의 시작이 모두

유대인의 절기인 오순절/유월절/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행보로부터 시작되어

유대 종교지도자들과의 충돌로 이어지게 된다.

 

오늘의 말씀은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친사건이 발단이 되어

안식일 논쟁과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시비로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논쟁과 시비를 논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고쳐 주신 이 중풍병자를 다시 만나

그 사람에게 경고하신 말씀을

짚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 5:14-

 

See! You are well again,

Stop sinning

or something worse may happen to you

 

나는 어제 묵상에서 이 사람이 고침을 받은 것은

그에게서 어떤 믿음을 보았기 때문이라기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과거 광야 38년을 상기시키는

상징성을 가지고 베데스다 연못가의

많은 병인들 가운데서 특별히 이 사람을 지목하여

고치신 것으로 이해했는데 [신2:14]

 

혈기마른 병자처럼 생명력을 상실한

유대교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변화를 받을 수 있으며

광야가 아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암시하는 상징성으로

요한이 이 38 년 된 이 병인이 치유된 것을

그가 전달하는 계시의 영적 코드로

사용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자신의 믿음으로서 보다

주님께서 의도하시는 어떤 특별한 목적 때문에

고침 받은 것으로 이해하게 되는데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사람을 다시 만나서

그 사람이 병 나은 것에 대한 은혜와 축복을

상기시키고 이 은혜를 잘 유지하라고

말해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묵상적용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난제에 부딪히는 것은

예수님은 요한복음 9장에서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불행이 그 자신이나 부모의 죄가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하심으로

 

사람의 질병과 불행이 죄에서 기인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 하셨는데 [요9:3] 왜 여기서는 이 사람의 질병이

마치 죄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말씀하셨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이 구절에 대한 영어 성경을 보면

죄 짓는 것을 금하는 것을 현재형으로 쓰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지난 38년간 죄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죄, 그러니까

 

그가 어떻게 고침을 받았던지

자신이 고침 받은 그것이 우연하게 된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지 못하고

지금 감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네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면

너에게 더 심한 일들이 닥쳐올 수 있는데

여기서 더 심한 것이란

영원한 사망이요, 심판이 아니겠는가(?)

 

어찌 되었든 이 사람은 자신을 고친이가

예수님인 줄 알았고 유대인[지도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게 되는데

그들은 예수님이 병을 고치신 선한 일에는

주목하거나 관심이 없고

오직 안식일을 범했다는 것에만 집중하여

안식일 범죄자로 물고 늘어진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안식일인 지금 이 순간에도]

일하시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고

하나님을 자기 친아버지라고 호칭하심으로

유대인[지도자]들의 분기를 촉발시키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충돌은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미 갈릴리에서 유대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실 때

충분히 예견하시고 올라온 일이었다.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곡해하여 오히려 율법을

사람 잡는 수단으로 활용하며

가련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올가미로 묶고 있던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오만과 오용을 깨트리시고

진정한 아버지의 뜻을 나타낼 필요가 있었으며

자신이 곧 이 율법을 내리신 하나님 자신이며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나타내고자 하셨는데

 

오직 유일신 사상으로 고착되어있는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소 귀에 경 읽기 식이며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정면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자신을 보내사

하라고 하시는 일을 위하여

무모한 충돌에 자신을 내 던지시고 계신다.

 

본래 안식일 계명이라는 것은

당시 유대사회에서 종/노비로 팔려서 살아가야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시며 심지어는

농사에 이용되는 소나 나귀 같은

동물들의 휴식과 복지까지 염려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에서 내려진 계명으로써

 

안식일 이라는 것이

안식일이라는 날 자체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 또는 심지어 동물들을 위해서 내리신

계명의 본질을 몰라서 이 계명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지도자적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도리어 괴롭히고 있었던

당시 유대인[지도자]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예수의 모습으로 내려 오셔서

이 계명의 바른 뜻을 정정해 주시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식민지 통치 아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안식일에 쉬고 싶지만 안식일에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었던 하층민들에게

이 안식일 계명은 도리어 족쇄가 되어서

그들을 죄인으로 몰아갔고

 

안식일에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만했던

유대 지도층들에겐 이 계명을 빌미로

백성들을 죄인으로 몰아치며

그들 위에 군림하는 법으로 이용했는데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지금[안식일인 그 날]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심으로 하나님이신 자신을

가난하고 착취당하며 죄인 취급당하는

당시 가난하고 고달픈

대부분의 백성들과 동일선상에

자신을 놓으셨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오늘 내가 이해하는 안식일의 진정한 정신은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주님 !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와 정신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일부러 안식일에 병인들을 고치시며

선한 일을 행하셨던 주님의 마음을

제가 잘 헤아려 알게 하여 주시고

저도 주님이 가지셨던

바른 안식일 정신에 입각하여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신앙과 삶이 되게 하소서.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 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羊門)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연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다리 저는 자, 혈기 마른 자(중풍병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니

이는 이따금 주의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물을 휘저어 놓는데),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그들이(유대인들이)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이때부터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예루살렘 양문 곁에 있는 베데스다 연못은 이름은 '은혜의 집'이지만 결코 은혜스럽지 않은 장소이다.

물이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가면 무슨 병이든지 낫는다는 소문 때문에 각종 병든 사람들이 모여서 물이 움직일 때를 기다리다 움직이는 기미만 보이면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경쟁하기 때문에 이름과 달리 전혀 자비롭지 않고 은혜는 찾아볼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그곳은 서로를 짓밟으며 1등 하려고 아귀다툼하는 비정한 세상의 축소판이었다.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낫는다는 전설 같은 말에 병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염없이 기다리며 연못가에 누워있었다.

그때 예수님은 38년된 병자에게 다가가서 물으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당연한 질문 같지만 병자는 낫고 싶다는 말보다 낫지 못하는 이유를 열거하며 불평을 늘어놓는데 그럼에도 주님은 그를 고쳐주셨다.

예수님은 연못가의 수많은 사람 중 38년된 병자 한사람에게 관심이 있으셨듯이 오늘날 70억 인구보다 나 한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신데 나의 관심은 누구에게 집중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38년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시고 병자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일어나 걸어 나간다.

어쩌면 38년된 병자는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좋지 않는 성품과 습관, 남탓하며 불평하는 마음, 환경과 문제의 자리에 매어 있지 말고 관리하고 자신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하셨다.

절제하지 못하는 감정과 사탄이 늘어놓고 유혹하는 죄도 다스리고 주님이 승리하신 것처럼 세상을 이기는 삶이 되어야 하겠다.

베데스다 연못 같이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이 없는 세상에서 몸과 마음이 병든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인간적이고 헛된 방법을 버리고 오직 살아계신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순종할 때 우리의 삶에도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이후에 예수님이 병자를 고쳐주시자 유대 지도자들은 안식일을 범했다고 적대시한다.

요한복음 5장부터는 예수님이 이적을 베푸실 때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대적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자그마치 38년 동안 병상에 누워있던 사람이 치료를 받아 침상을 들고 걸어갔음에도 바리새인들은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축하해주기는 커녕 오로지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비난하고 있다.

종교가 생명력을 상실한 채 의식과 법칙에 붙잡혀 있으면 복음의 본질은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율법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이 나타나자 알아보지 못하고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거나 높임받기를 원치 않으셨다.

예수님은 환자를 치유하고 생색을 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사람의 회복에만 관심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한 이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일을 하고 일을 시킨다고 예수님을 박해하고 있다.

생명에 관심을 갖느냐 아니냐를 보면 진짜인지 가짜 종교인지 구분할 수 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일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 앞에서 안식일에 일하시는 이유를 설명하신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행한 치유의 정당성을 하나님과 자신의 동등성에서 찾으신다.

하나님이 창조의 일을 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치유를 통해 재창조의 행위를 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나 교회의 존재 이유도 생명을 살리는 데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참 신앙은 세상의 소망이 된다.

교회도 복음의 진리를 회복하여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종교적 악습을 버리고 말씀으로 매일 새로워지는 신앙으로 자라가길 소망합니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0~12)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영 중에서 멸하신 고로 마침내는 다 멸망되었느니라.(신 2:14~15)

 

그 날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 하시니

솔로몬이 하나님께 말하되 주께서 전에 큰 은혜를 내 아버지 다윗에게 베푸시고 내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주는 내 아버지 다윗에게 허락하신 것을 이제 굳게 하옵소서 주께서 나를 땅의 티끌 같이 많은 백성의 왕으로 삼으셨사오니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하니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네게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 하시니라

이에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 회막 앞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대하1:7-13)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139:1-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7)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엡 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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