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 묵상(누가,요한복음)

2025년1월14일(화) (요 4:43~54) 표적을 따르는 미숙한 신앙에서 진정한 신앙으로

by 방일 2025. 1. 11.
728x90

 

 

 

 

<요한복음 4:43~54>  표적을 따르는 미숙한 신앙에서 진정한 신앙으로

 

 

 

 

오늘의 찬송(새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시다

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44.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말씀 묵상>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43.  이틀 후에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44.  (전에 예수께서는 예언자가 자기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함을 직접 증거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45.  예수께서 갈릴리에 도착하시자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를 환영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께서 거기서 행하신 일들을 모두 목격했던 것입니다.
46.  예수께서는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던 곳인 갈릴리 가나에 다시 들르셨습니다. 그 곳에는 왕의 신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병에 걸려 가버나움에 있었습니다.
47.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셨다는 소문을 들은 왕의 신하는 예수께로 가서, 오셔서 자기 아들을 고쳐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의 아들은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4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표적이나 기사를 보지 않고서는 전혀 믿으려 하지 않는다.”
49.  신하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와 주십시오.”
5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가 보아라. 네 아들이 살 것이다.” 그는 예수의 말씀을 믿고 갔습니다.
51.  신하가 집으로 가는 도중에 마중 나온 하인들을 만나 아들이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52.  그가 하인들에게 아이가 언제부터 좋아졌느냐고 묻자 “어제 오후 1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종들이 대답했습니다.
53.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때였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와 그의 온 집안이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돌아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었습니다.

 

 

<오늘의 말씀 요약>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본 갈릴리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와서 아들을 살려 달라고 거듭 청하자, 예수님은 그에게 아들이 살아 있다고 하십니다. 왕의 신하가 말씀을 믿고 가던 중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때 아들이 나은 줄 알고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말씀에 의지하는 행동하는 믿음

 

 

요한복음 4:43-54(그루터기 선교회)

 

[예수님의 동선을 따라가는 오늘의 말씀 이해하기]

 

예수님이 공생에 초기에 예루살렘에 내려가서

성전청결 작업과 또 많은 표적을 행하신 것은(2:23)

메시야로써 자신의 등장을 전국구로 알리시는

적절한 기회가 되기도 했지만

한 편 이때부터 예수님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는

당대의 종교지도자들, 특히 바리새인들에게는

시기심과 경쟁의 경계 대상으로써

위험한 표적의 인물로 지목되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물론 니고데모 같은 존경받는 인물은 예수님께 찾아와

존경을 표시하고 상담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에게는 경계 대상 1호로 지목된 것 같다.

 

따라서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유대를 떠나

요단강 쪽으로 올라가 자신의 지원자가 될 수 있었던

세례 요한의 변경된 세례 터로써 애논 근처로 가셨는데

매의 눈을 가진 바리새인들은 그에게서 뭔가 정보를 얻고자

그곳까지 추적하여 따라와 예수의 동태를 감시하였으니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그 곳 세례 터를 떠나 [4:1]

다시 북쪽 갈릴리 지역으로 가신 것을 당연한 수순이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까지

일찍 단명하게 목숨을 잃으시면 안 되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내놓는 시점까지는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는 시간 관리가 필요하셨다.

 

바로 이 점이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대부분의 시간이

북쪽 갈릴리 지역에서 이루어지지고

자신을 호시탐탐 노리는 수도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에는

명절과 같은 특정한 기간에 제한되었던 것을 엿보게 된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이제 예수님이 갈릴리 쪽으로 오신 과정과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되는데

세례요한의 변경된 세례 터에서 가까운 요단강에서 떠나

사마리아 수가성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행복한 이틀을 보내시고 갈릴리로 향하면서

갈릴리 사역에 임하는 자신의 마음을

담담하게 의미심장한 마음을 담아 남기신다.

 

"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하느니라." [4:44]

 

1. 유명세를 타는 것보다 명예보다 소중하게 여기신 것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누가복음의 저자도 남겼는데

에수님이 자신의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가르치신 후

그의 놀라운 가르침에 비해 그는 고작

목공소 집의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고 [눅4:22]

예수를 배척하는 분위기에서 사용했다. [4:24]

 

그러나 이 책의 저자 요한이 오늘의 본문에서 밝히는

예수님의 입에서 스스로 나온 이 말씀은

부정적인 의미보다 긍정의 의미로 이해하게 된다.

 

달리 이야기하면

자신이 유명해지는 것과 비례하여 자신을 죽이려는

위협이 존재하는 예루살렘과 유대지역에 비해

이 곳 갈릴리는 나의 고향이기도 하고 또 그것 때문에

나의 성장 과정에 대한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나를 존경하거나 높이지 않는 분위기가 될 것이니

당분간은 목숨을 보존 할 수 있으리라는 의미로 이해하게 된다.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뤄드리기까지는

목숨을 보존하기를 원하시는 것 때문에

너무 빨리 유명해져서 목숨을 단축하기보다

오히려 높임을 받지 못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신 이 말씀은

오늘 이 시대에서 천국의 일꾼된 나에게도

사람들에게 유명해지는 것과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 사이에서

내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해 밝혀주는

의미심장한 말씀으로 마음 깊이깊이 새기게 된다.

 

2. 다시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신 표적 [4:46~54]

 

요한은 이 복음서를 기록한 이 책의 결론부분에 가서

예수의 행하신 표적이 많고도 많지만

이 책에 다 기록할 수 없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선별하여 기록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데[요20:30-31]

 

이런 의미에서 여기 갈릴리 가나에서

지난번에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주신 표적 외에

또 다시 먼 곳에서 죽어가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고쳐주신 이 표적 역시

그의 신적인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선별하여 기록한 표적으로 보인다.

 

예수님이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던 갈릴리 가나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죽어가는 자기 아들을 살리려

예수님을 찾아온 이 사람은 헤롯 안티파스의 신하인데

그의 집이 갈릴리 호수의 중앙 북쪽 해안 도시인

가버나움에 거주한 것을 보면 그러하다.

 

당시 갈릴리 지역과 베례아 지역은 헤롯 안티파스가

분봉 왕으로 지배했는데 아마 이 신하는 가버나움에서

왕명을 받들어 집행하는 사람인 것 같다.

이곳 가버나움은 또한 이 책의 저자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의 고향이기도 한데 이곳에서 가나까지는

16마일 약 30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신하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가버나움으로 따라가기보다는

그 신하가 말씀을 믿고 가기를 유도하셨는데

이는 표적과 기사를 보고서야 믿는 기적 추구적 믿음보다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에 서기를 바래서 하신 것이다[4:48]

 

왕의 신하는“네 아들이 살아있다” 하는 그 말씀을 믿고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중에 자신이 집에서 아들이 살아난

이 기쁨을 전하러 오는 종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살아난 시각이 예수의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간인 줄 알고

저와 온 가족이 믿게 되었다고 기록되고 있다.[4:53]

 

갈릴리 가나에서 먼저 번에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으로

질을 변화시는 창조주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었다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리신 것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그의 신적 능력을

또 다시 한 번 드러낸 셈인데

이 책의 저자 요한은 바로 이 점에 초점을 맞추어

예수님이 하나님 곧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드러내신다.

 

그러고 보니 이곳 갈릴리 가나는

예수님의 제자 나다니엘[바돌로매]의 고향이기도 하다.[요21:2]

그 역시 친구 빌립에 의해 예수님께 인도받았을 때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시며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예수의 신적 능력을

경험한 사람이기도 한데 여기 자신의 고향 가나에서

다시 한 번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예수의 신성을 본 셈이다.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가장 인상 깊게 닿아지는 교훈은

왕의 신하가 예수를 모시고 자기 집으로 가기를 원했다가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면서 노중에 기적을 경험한 것이다.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4:50]

 

자신의 눈앞에서 기적을 보기 원하며

기적을 보고서야 믿겠다는 기적 추구적 믿음보다

말씀의 권위를 의지하는 계시[말씀]의존적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이신 이 한 구절의 말씀은

오는 내 눈으로 예수님을 보지 않으면서도 믿게 되는

오고 오는 모든 시대의 성도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미리 주신 말씀으로도 받아드리게 된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그 것은 하나님께서 나타내 보이신 말씀[계시]에 근거하여

나의 믿음을 가지며 그 말씀에 최고의 권위를 갖는 것인데

이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그가 사람을 상대하시는 그의 인격을 믿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하신 말씀에 대한 나의 반응을

내가 실천하는 행동하는 믿음으로 나타내 보일 때

이러한 나의 믿음에 반드시 반응하여주시고

응답하여 주시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께로)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그의 아들이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그가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오후 1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라고 말씀하신 그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돌아오신 뒤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예수님이 갈리리로 가시다 가나에 들러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을 고친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갈리리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나와서 환영한다.

이것은 명절에 예루살렘에 갔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았기 때문인데 그들은 표적을 보고 신기해서 예수님께로 몰려올 뿐 예수님에 관한 말씀이나 구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고 책망하신다.

예수님이 가나에 이르셨을 때 가버나움에 병든 아들을 둔 왕의 신하가 자기 집에 가서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직접 가지는 않으시고 왕의 신하에게 네 아들이 살아났으니 가라고 하셨고 그 말씀을 믿고 내려가던 신하는 아들의 병이 나았다는 전갈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와 온 집안이 다 믿게 된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만 들었지만 믿고 가다가 기적을 체험했는데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예수님은 따라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바리새인이나 유대인 종교지도자들도 여럿 있었다.

그렇지만 저들은 예수님의 표적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기보다는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하거나 눈에 불을 켜고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였을 뿐이다.

표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망한 대로 이루어졌을 때, 갑자기 큰돈을 벌었을 때, 안 될 줄 알았던 일이 성사되었을 때...그럴 때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고 찬양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얼굴이 아니라 손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당신이 누구신지를 알려주시고 믿을 수 있도록 보여주신다.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은 눈에 보이는 열매를 선물로 받게 되는데, 과연 나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지 진심으로 돌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그런즉 이제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의 종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왕하 10:1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삼하 22:31)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시 18:3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 16:20)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사 57:19)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눅 4:22)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