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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요한일,이,삼서,유다서,요한계시록)

2024년11월25일(월) (계 3:14~22) 거룩한 열정으로 주님을 섬기는 교회

by 방일 2024.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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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14~22>  거룩한 열정으로 주님을 섬기는 교회

 

 

   

오늘의 찬송(새 320장 나의 죄를 정케 하사)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말씀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말씀 묵상>

 

 

라오디게아 교회

14.  “너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이렇게 써라. ‘아멘이시요 신실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원이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15.  나는 네 행위들을 알고 있는데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바란다.
16.  네가 이렇게 미지근해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으니 내가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낼 것이다.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풍족해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 너는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사람임을 알지 못한다.
18.  그러므로 내가 네게 경고한다. 네가 풍족하게 되려면 내게서 불로 정련한 금을 사거라. 너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않으려면 흰옷을 사서 입어라. 네가 보고 싶으면 안약을 사서 네 눈에 발라라.
19.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마다 책망하고 징계한다. 그러므로 너는 열성을 내고 회개하여라.
20.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21.  이기는 사람에게는 내가 이긴 후에 내 아버지와 함께 그분의 보좌에 앉은 것같이 내가 내 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할 것이다.
22.  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오늘의 말씀 요약>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주님이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부자라 말하지만, 자신들이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주님에게서 불로 연단한 금, 흰옷, 안약을 사야합니다. 이기는 사람은 주님이 그분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실 것입니다.

 

 

 

경제적인 부와 신앙의 열심은 반비례 하는가?

 

 

▼ 요한계시록 3:14-22

 

묵상내용(그루터기 선교회)

 

신학교 졸업반이 되었을 때 3 년간 지도하셨던

영적 어버이 같은 스승님께서

마지막 당부의 말씀은 다른 아무것도 없으셨고

신앙생활을 하되 힘을 써서 열심히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이 안 되었고 다 알고 있는

시덥지 않는 이야기를 하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과연 이 한 마디의 말씀이 나의 신앙생활 전체를

지배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동력을 얻기 위하여 에너지/불이 필요하듯이

활기찬 신앙생활을 위하여

열심의 불이 필요한데

이것은 내가 주님을 섬기되 힘을 써서 할 때

따라 올 수 있는

영적 에너지라는 것이 너무나 명백합니다.

 

오고 오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을 대표하여

상징적 일곱 교회로 등장된 교회들 중에

시계바늘 방향으로 마지막 순서에 해당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책망과 훈계는

한 마디로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라는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라오디게아 성도들의 신앙을

뜨겁지도 차지도 않는 미지근한 신앙으로

만들어놓았을까(?) 그 이유를 살펴보면

책망과 경고에서 이어지는 말씀에서 분명히 보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온천과 광산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산업들을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대부분의 주민들이 경제적인 부를 이루고 살았던

그 도시에서 더불어서 함께

경제적 부를 누리고 살았을 그곳 성도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육적인 부요와 안일함과 평안함을 누리는 가운데

신앙생활의 열심과 충성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누리는 경제적인 부와

그 사람의 영적인 열심은 서로 반비례하는 것일까요(?)

 

주님께서 주시는 책망과 경고에 이어 내리시는

영적 치유의 처방을 보면 이 점이 분명해 집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그들은 경제적인 부를 가지게 되었지만

믿음의 가난뱅이들이 되었기 때문에

도리어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믿음의 부요한 자들이 되라는 처방을 받고 있고

 

그들은 비싸고 화려한 옷으로

자신들의 외모를 꾸미고 치장하는 사람들이 되었지만

영적으로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는

부끄러운 신앙생활로 성결의 삶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흰 옷 곧 옳은 행실의 삶을 요구받고 있으며

 

그들은 세상의 연락을 즐기는 일에는 눈을 떴지만

주님과 천국을 바라보는 소망에는 눈이 닫혀져서

영적 소경들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다시 영적 안목을 가지며

참 소망의 삶에 눈을 뜨라고 요구 하십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경제적인 부를 누리며 잘 살면서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흔치 않다는 것인데

이것이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적용되는 말씀으로써

오늘 우리시대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묵상적용

 

따라서 경제적인 부를 누리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깨어있고 열심을 내어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존경스럽다고 생각됩니다.

 

만일 그의 열심이

그가 얻은 경제적인 부와 세상에서 얻은 지위를

유지하려고 하는 기복적인 것에 있는 것이라면 몰라도

 

진정 이런 것들과 관계없이 부요함으로 더욱 겸손하고

부요함으로 죄짓는 일이 없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되기를 바라는 열심이라면

그는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얻은 사람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이렇게 경제적인 부를 누리면서도

신앙생활도 순결하고 진실하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가 가진 많은 돈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 자신을 교만하게 만들며

그가 가진 많은 돈과 화려한 것들이

그를 범죄 하게 만드는 일이 다반사 이며

 

차라리 많이 갖지 않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는 일들이 얼마든지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주님께서는

광야 이스라엘을 먹이시고 돌보셨던 것처럼

세상에 사는 성도들에게

가능한 일용할 것으로만 자족하여 살게 하시며

주님께서도 우리가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에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신 것일까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과 경고

그리고 영적 치유를 위한 회복의 말씀으로써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 속에 해답이 있는 것 같은데

 

신앙생활의 참 행복은

내가 경제적으로 많이 가지고

부를 누림에 있지 않고

 

화려한 것을 걸치는 것에 있지도 않으며

 

자신의 눈을 즐겁게 하는

세상 연락을 즐기는데도 있지 않고

 

오직 내가 주님 안에,

그리고 주님이 내 안에 함께 살아가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불신자들을 전도하는데 많이 사용되는 이 말씀의 구절이

본래는 이미 예수님을 믿고 살면서도

세상의 부요함 때문에 헛된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서

신앙생활의 열심을 잃어버리고 사는 성도들에게

주시고 있는 말씀 이라는 점이

이 아침 마음 깊이 새롭게 닿아 집니다.

 

내가 지금 세상에서 부요하게 살든지

가난하게 살던지 이런 것들은

행복의 절대 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며

 

오직 예수님 내 안에 모시고

나 예수님 안에 있어

오직 예수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것에

내 인생의 행복이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오 주님 !

내가 가지고 누리며 살아가는 것들이

주님께로 향하는 열심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하소서

세상에서 모든 것 얻었어도

주님을 잃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오니

 

나, 주님 안에 있고

주님, 내 안에 함께 계시어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삶에

나의 모든 것을 집중할 수 있게 하옵소서. - 아멘 -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며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너는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 하나,

사실은 네가 얼마나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네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네 눈이 밝아지게 하라.

무릇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일수록 책망도 하고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너는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본문 말씀은 미적지근하여 책망 받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아멘이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라고 소개하신다.

이는 예수님이 진리이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며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미지근한 신앙이요 가난한 교회라고 칭찬 없는 책망을 받고 있다.

미지근한 신앙이란 교회와 세상 사이에서 타협하는 세속화된 신앙이라는 것인데 세상에서는 처세술과 인간성이 좋다고 환영 받을지 모르나 주님께는 토하여 내쳐버릴 더러운 것이 되고 만다.

또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상과 타협한 결과 외적으로는 번성하고 부유했으나 영적으로는 가난한 교회요 눈멀고 가련한 교회가 되어 서머나 교회와는 정반대의 평가를 받았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하시는 권면의 말씀은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는 것이다.

불로 연단한 정금 같은 믿음으로 흰옷(속죄와 구원)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고 안약을 사서 발라보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영적 눈을 밝혀 자신들의 상태를 직시하고 바르게 신앙생활하기를 촉구하시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이 문을 두드리며 밖에 서계신다고 말씀하신다.

교회의 주인이자 머리이신 예수님이 그 교회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계시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인데 자칫하면 그것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 교회를 사랑하셔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고 열심을 내라고 권면하신다.

미지근한 믿음의 원인은 자기만족에 빠진 신앙생활을 말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요하고 세상의 고난이 없는 편안한 삶은 안일하고 둔감한 영적상태를 초래했고 주님의 사역에도 쓸모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게으르고 자기만족의 신앙을 버리고 열심과 충성을 회복하여 칭찬받는 신앙으로 자라가길 소망합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4-36)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마 15:12-15)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마 23:3~7)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눅 12:49~5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 18:13)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행 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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