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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나무 – 류시화

by 방일 2024.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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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 류시화 (2024.10.26.)

 

 

나무 - 류시화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주었다

 

내 집 뒤에

나무가 하나 있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 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때

그 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 주었다.

 

 

나무의 시 - 류시화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

눈을 감고

나무가 되어야지

 

너의 전생애가 나무처럼 흔들려야지

해질녁 나무의 노래를

나무 위에 날아와 앉는

세상의 모든 새를

너 자신처럼 느껴야지

 

네가 외로울 때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너의 나무가 서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그리하여 외로움이 너의 그림자만큼 길어질 때

해질녘 너의 그림자가 그 나무에 가 닿을 때

넌 비로소 나무에 대해 말해야지

그 어떤 것도 말고

 

 

* 이제 가을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낸다.

온갖 자연은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길고 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내일의 세대를 위해 참된 생명의 연장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낌없이 우리 인생을 위하여 기쁨과 소망을 주고 있다.

그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우리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오직 나만을 위하여

오직 나의 가정만을 위하여

오직 나만 잘 살면 되는 것이다.

우리 함께 말로 이해하고 부대끼며 사랑하며 나아가면 될 것인데...

 

그래도 나무는 자기의 모습을 조용히 드러내고 있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안 – 정인(情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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