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4:12~20> 영적 자녀를 세우는 해산의 수고
오늘의 찬송(새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17.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말씀 묵상>
12. 형제들이여, 내가 여러분과 같이 됐으니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내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습니다.
13. 여러분이 알다시피 내가 처음에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육체의 연약함 때문이었습니다.
14. 그리고 내 육체의 연약함이 여러분에게 시험거리가 될 만한 것이었는데도 여러분은 비웃거나 멸시하지 않았고 도리어 나를 하나님의 천사처럼, 그리스도 예수처럼 환영해 주었습니다.
15. 그런데 여러분의 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여러분에게 증언합니다. 여러분은 만약 할 수만 있었더라면 여러분의 눈이라도 빼서 내게 주었을 것입니다.
16. 내가 여러분에게 진실을 말해서 여러분의 원수가 됐습니까?
17. 그들이 여러분에게 열심을 내는 것은 좋은 뜻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을 이간시키고자 함입니다. 이는 오직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들을 열심히 따르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18. 그러나 그들이 좋은 일로 여러분에게 열심을 내는 것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뿐 아니라 언제라도 좋습니다.
19. 내 자녀들이여,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나는 다시 여러분을 해산하는 고통을 겪습니다.
20. 내가 지금 여러분과 함께 있어서 내 음성을 바꾸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여러분에 대해 당혹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이 처음에 복음을 전했을 때는 그의 육체가 약했는데도 성도들이 그를 천사나 예수님처럼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간하는 이들 때문에 성도들이 참된 말을 하는 바울을 원수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해산의 수고를 합니다.
예수님을 닮은 참 목자상[牧者像]
▼ 갈라디아서 4:12-20
묵상내용(그루터기 선교회)
- 오늘 “세월호” 침몰 10일째를 맞으며 -
차가운 바다 속에 전복된 선체 안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영혼들을
주님 !
불쌍히 여기사
주님의 긍휼과 자비로 거두어 주시며
육신의 장막을 넘어선
영혼 저편에서는
그들이 참 생명의 주재이신
주님으로 인하여
찾아 갈 곳이 있게 하시고
희망의 출구가 되어 주소서 – 아멘 -
[ 뜻으로 읽는 오늘의 말씀: 예수님을 닮은 참 목자상 (牧者像)]
거짓 교사들의 꼬임에 빠져 잘못된 길에 들어선 성도들에게
나의 사랑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으니
다시금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바울의 편지를 통하여
나의 영적 상태나 형편에 관계없이
번함 없는 사랑으로 나를 놓지 않고 계시는 주님의 마음을 느끼며
신앙 공동체 안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배웁니다.
1. 동일시 [ identify with ] (4:1)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12]
이미 마음을 바꾸고 거짓 교사들을 따라간 성도들이지만
아직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고
나와 너희는 여전히 뗄 수 없는 “하나”라고 강조하는 동일시[同一視]에서
예수님을 닮은 진정한 목자 상으로서 바울의 모습을 봅니다.
특별히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평안을 얻기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법인데
바울 사도는 이미 배신한 갈라디아 성도들로 인해 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한 것이 없다는 말로 그들을 안심시키고 있습니다.
나의 마음에는 피눈물이 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철부지 아이를 달래는 어미처럼 상대방의 위치에 내려가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는 모습에서 주님을 닮은 참 목자 상을 배웁니다.
2. 좋은 기억 되살리기:
첫 사랑의 추억 [4:13-15] [Memory of the First Love]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시간이 지나면서 어딘가 틈이 벌어지고
사랑의 위기가 찾아올 때 지난 시절 첫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회복을 위한 좋은 촉매제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지난 날 갈라디아 교인들과 주고받았던 아름다운 사랑의 시간들을
그리워하며 그들이 또한 이 아름다웠던 사랑을 기억하고
떠나간 마음이 다시 돌아오기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 때 그들은 얼마나 목회자 바울을 사랑했는지
바울의 인간적인 약점이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눈이라도 빼어 줄 정도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다메섹 도상에서 강렬한 빛 가운데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의 눈에 이상이 오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좋지 않은 시력으로도 복음 전파에 최선을 다하며
좋지 않은 시력으로 성경을 보면서 복음을 전했을
주님을 닮은 참 목자 상 바울과
그를 사랑했던 갈라디아 성도들 사이의 첫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참 목자의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3. 직면하기 [face to face]
포도원을 헤치는 여우 몰아내기 [4:17-18]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충분히 그들의 마음을 감싸고 달랜 후에는
정말 해야 할 정곡을 찌르는 말로써 그들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말하고 지금 포도원[교회]를 헤치고 있는 세력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직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목자와 양들 사이에 틈이 벌어지게 되었을 때
그렇게 만든 문제를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그 문제를 직면하여 해결을 시도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묵상적용
[교훈과 적용: 전체적으로]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4:19-20]
거짓 교사들의 꼬임에 넘어간 갈라디아 교인들의 변절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그들의 사랑을 돌이키며 바른 신앙에 세우기 위해서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이미 선교 초기에 치뤘던 해산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어떤 댓가라도 지불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에서
주님을 닮은 참 목자상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그것은 마치 길 잃어버린 양을 찾도록 찾기까지 찾아나서는
목자의 심정이며
사나운 맹수에게 몰려서 사지에 처한 양을 구출해 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참 목자의 모습입니다.
선교사이면서 목회자였던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써내려간 편지를 통해
오늘 우리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이 무엇이며
또 내가 참 목자 되시는 주님을 닮아서
어떻게 주님의 양들을 돌보며 사랑해야하는지
이 아침 가슴 깊이 새기는 교훈으로 받아 드립니다.
주님 !
세월호 침몰과 더불어
수많은 영혼들을 저 차가운 바다에 수장시킨 배후에는
거짓된 구원 교리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사람들이
거짓된 방법으로 회사를 경영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
주님의 양들이 보호되며
이미 거짓 교사들에게 돌아간 영혼들이라도 다시 돌이키기 위하여
바울처럼
동일시하며,
좋은 기억들을 되살려주고
문제에 직면하게 하며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참 목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도 알다시피 내가 처음에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내 육체의 연약함 때문이었느니라.
(혹은, 내 육체가 질병을 앓았던 것이 기회가 되어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내 육체에 너희에게 시험 거리가 될 만한 것이 있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도리어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그런데 너희의 그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는 할 수만 있었다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을 것이라.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그들이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키려는 것이요,
너희로 자기들을 향하여 열심 내게(자기들을 열심히 따르도록) 하려는 것이라.
그들이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설명 : 그들이 좋은 뜻으로 열심을 낸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은 일이니라.]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내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설명 : 내가 이제라도 너희를 만나
내 음성을 부드럽게 바꾸어서 말할 수 있으면 좋겠노라.
나는 너희의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은지 당황하고 있노라.]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에 처음 복음을 전했을 때 자기 약점에도 불구하고 영접해주던 것을 추억하며 거짓에 유혹된 신앙을 돌이키기를 권면하고 있다.
바울은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첫째, 갈라디아 성도들과 바울의 친밀한 유대 관계로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둘째, 바울 자신이 주님과 밀접한 관계인 것처럼 갈라디아 성도들도 복음 안에서 견고히 세워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주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바울을 만났을 때 바울의 몸에 시험하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업신여기거나 버리지 아니하고 예수님처럼 영접했었다.
바울이 말하는 약함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아마 오랜 선교여행과 유대인들의 핍박에 의한 질병이나 쇠약함 같은 것일 수 있는데 바울은 그들의 사랑에 대하여 눈이라도 빼줄 사람들이었다고 칭찬하며 그때의 감격이 어디 있는지 묻고 있다.
바울은 이전에 자기가 갈라디아에 복음 전하기 위해 수고했던 것처럼 그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심어주기 위해 또다시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한 사람이 온전한 신앙인으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수고가 요구됨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도전과 어려움을 거쳐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져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누군가 그런 수고를 해주었을 것인데 이제 나도 다른 사람을 세우기 위해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교회는 도전을 받고 시련을 겪기 마련인데 먼저 처음 복음을 들었을 때의 감격을 회복해야만 한다.
결국 날마다 계속적인 영적 성숙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기 위해 끊임없는 믿음의 훈련과 기도를 통해 자라가길 소망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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