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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갈라디아서,에베소서)

2024년10월19일(토) (갈 1:11~24) 핍박자를 전도자로 세우신 하나님

by 방일 2024.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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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11~24>  핍박자를 전도자로 세우신 하나님

 

 

 

오늘의 찬송(새 26장 구세주를 아는 이들)

 

 

바울이 사도가 된 내력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말씀 묵상>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바울

11.  형제들이여,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12.  그 복음은 내가 사람에게 받은 것도 배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받은 것입니다.
13.  내가 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 한 행위에 관해 여러분이 이미 들었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핍박했고 파괴하려고 했습니다.
14.  나는 내 동족 가운데 나와 나이가 같은 또래의 많은 사람들보다 유대교를 믿는 데 앞장섰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에 대해서도 매우 열성적이었습니다.
15.  그러나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나를 따로 세우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16.  하나님의 아들을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을 내 안에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때 나는 사람들과 의논하지도 않았고
17.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곧장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되돌아갔습니다.
18.  3년 뒤 나는 게바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그와 함께 15일을 지냈습니다.
19.  그리고 사도들 가운데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는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20.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장담하건대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것은 결코 거짓말이 아닙니다.
21.  그 후 나는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22.  그래서 내 얼굴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3.  다만 그들은 “전에 우리를 핍박하던 사람이 지금은 전에 그가 파괴하려고 하던 그 믿음을 전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24.  나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이 전한 복음은 예수님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그를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심은 이방에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때 바울은 혈육과 의논하거나 사도들을 만나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대의 교회들이 자신의 변화에 대해 듣고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고 밝힙니다.

 

 

 

잘못된 열심의 방향을 돌려주시는 주님의 은혜

 

 

▼ 갈라디아서 1:11-24

 

묵상내용(그루터기 선교회)

 

갈라디아 교인들의 마음을 도적질하기 위하여 다른 복음을 전했던

유대의 거짓 교사들에 대하여 저주성 발언까지 서슴치 않았던 바울은

오늘의 말씀에서는 눈물로 호소하듯 자식을 타이르는 어미처럼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자신이 전한 (복음)계시와 사도적 권위가

주님께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바울이 예수님께서 임명하신

12 사도 중의 한 사람이 아니므로 그의 사도적 직분은 거짓된 것이며

그는 다른 사도들에게서 얻어 듣고 배운 것으로 전하는 것이라는 말로

바울을 폄하하고 깎아내리며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이간질 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의심을 품게 된 사람들에게

가장 잘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써 간증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예수 믿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말하고

또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고 믿게 되었는지를 말하며

또 예수님을 만나고 믿게 된 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를

3단 논법을 사용하여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스스로 자신을 변호하고 있는 오늘의 말씀에서

잠잠히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나의 마음에 가장 크게 닿아지는 것은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 홀로 “아라비아(사막)으로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도 갈릴리 나자렛 마을에서 맑고 고요한 기다림 가운데

아버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시다가

마침내 이사야의 예언처럼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등장한

세례요한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것이 곧 선지자 이사야의 글이 자신에게 응해야 하는 때로 받아들이시고

요단강으로 나아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로 가셨는데

 

바울은 유대교에 대한 지나친 열심 때문에 예수 믿는 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갔다가 도리어 예수님께 붙잡혀져서 아나니아를 통해

세례를 받고 곧바로 아라비아(광야)로 나간 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메섹에 사는 주님의 제자 “아나니아”에게 예수님에 대해 조금 듣고

배웠겠지만 훗날 그가 지중해 연변의 나라들을 돌면서

복음을 전할 때 보여주는 예수님에 대한 풍부한 지식들과

복음에 목숨을 거는 그의 신념들은

그가 아라비아 광야에서 명상 중에 주님과 독대하여 만난 체험과

또 주님께서 주신 계시들에 근거함을 엿보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이 다른 사도들에게서 배워서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복음 자체이시며 인간 구원의 주체이신 주님께로부터

직접 받은 계시라는 것을 더욱 확실히 증명하기 위하여

아라비아에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가서

자신이 계시로 받은 복음을 전했으며

 

사도의 대표라 할 만한 베드로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의 이야기로써

겨우 15일을 함께 머물렀을 뿐이라고 말함으로써

내가 베드로와 겨우 15일 만나서 들은 것을 가지고

이 놀라운 복음의 계시를 전하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바울이 베드로를 만나러 간 것은 무엇을 배우러 간 것이라고 보기보다

자신이 받은 복음의 계시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가진 복음의 계시가

서로 일치하는 가를 검증하기 위해서 간 것이라고 생각되며

 

또 그가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 베드로와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만난 것은

자신이 아라비아 광야에서 계시 중에 만나주신 주님이

이 세상에 육체로 계신 동안에 한 지붕 아래서 한 형제로 살았고

또 스승과 제자로 살았던 이들을 만나봄으로써 주님께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더욱 풍부히 갖고 싶었던 이유였을 거라고 생각 됩니다.

 

묵상적용

 

더불어 오늘의 말씀에서 바울의 간증을 통하여

오늘 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두 가지 은혜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나를 만나주시고 잘못된 내 열정의 방향을 돌려주시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 그를 내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1:14-16]

 

열심이라는 것은 참 좋은 것이지만 잘못된 방향으로의 열심은

오히려 자신을 파멸로 이끌 뿐입니다

바울은 유대교에 대한 지나친 열심 때문에 예수 믿는 자들을

율법에 어긋나는 이단자들로 규정하고

그들을 처벌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는데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이 율법의 완성이며 마침표가 되시고

율법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께 이를 수 있다는 은혜를 알았을 때

 

천지가 개벽하는 것 같았고

이것은 그의 잘못된 열심의 방향을 완전히 되돌려놓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주권적인 은혜로 바울을 택하시고 잘못된 그의 열심의 방향을

주님을 위해 고생하는 이방의 선교사로 세우신 주님의 은혜가

오늘 주님과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픈 나의 삶에도

동일하게 임하여 주시기를 이 아침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주님보다 세상과 죄를 더 좋아하며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때가 많은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나도 주님과 복음을 위해

바울처럼 고생할 수 있는 은혜를 주소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그 복음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그때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그때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방인에게 널리 전하게 하시려고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내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년 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15일을 지낼 때

그때 나는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그 후 나는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으나

유대 지방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에게는 내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그들은 다만 “전에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지금은 그가 없애버리려고 했던 그 믿음을 전하고 있다”라는 소문만 듣고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사람으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고 자기의 사도직은 예수님께 직접 받은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자기의 사도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직분은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셨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다메섹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으며, 그후 삼 년 만에 예루살렘에 가서 보름 동안 있을 때에도 베드로와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는 보지도 못했다고 자신의 행적을 밝히고 있다.

율법 추종자로서 철저한 복음의 반대자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지독하게 핍박하던 자신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사랑이며 사람에게 받은 것보다 더 권위가 있다는 것이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우리가 교회를 섬기라고 받은 직분도 실상은 주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죄인의 구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인간의 의지나 학문적인 지성으로 만들어낸 창작물이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계시로 가르쳐 주시고 복음을 깨닫게 하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이 전하는 복음은 다른 사람들처럼 사람에게서 배운 이론이나 학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임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인간의 능력으로 질 수도 없는 율법의 짐을 지우신 것이 아니라 순종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사랑의 길을 열어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사람들이 멸망당하고 지옥가는 것은 자기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복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로 복음이 사명이 된다는 것은 거저 받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해서 빚진 자의 마음으로 은혜를 베풀며 사는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예수님 안에서 죽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셔서 나를 통해 살아가시는 복음의 사람으로 날마다 자라가길 소망합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 16:7)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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