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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다니엘,호세아,요엘,아모스)

2024년10월8일(화) (호 6:1~11) 회복의 주권자에게 돌아오십시오

by 방일 2024.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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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6:1~11> 회복의 주권자에게 돌아오십시오

 

 

 

오늘의 찬송(새 523장  어둔 죄악 길에서 )

 

 

 

백성들의 불성실한 회개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7.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8.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9.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10.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느니라
11.  또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말씀 묵상>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음

1.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그가 찢으셨지만 우리를 고쳐 주실 것이다. 그가 때리셨지만 우리를 싸매 주실 것이다.
2.  이틀이 지나면 그가 우리를 살리실 것이다. 3일째에 그가 우리를 일으켜 세워서 우리가 그 앞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3.  그래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를 알기 위해 전심전력하자. 그가 오시는 것은 새벽이 오는 것처럼 분명하다. 그는 마치 비처럼, 마치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우리에게 오실 것이다.
4.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 줄까? 유다야,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 줄까? 너희 인애는 아침 구름과 같고 금방 사라지는 새벽이슬과 같다.
5.  그러므로 내가 예언자들을 시켜 그들을 찢어 쪼개고 내 입에서 나오는 말로 너희를 쳐부쉈다. 너에 대한 심판이 번개처럼 올 것이다.
6.  내가 바라는 것은 인애이지 제사가 아니며 하나님을 아는 것이지 번제가 아니다.
7.  그러나 그들이 아담처럼 언약을 어겼다. 그곳에서 그들이 내게 신실하지 못하게 행동했다.
8.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사람들의 성읍이어서 피 발자국으로 덮여 있다.
9.  약탈자 무리가 매복해 사람을 기다리는 것처럼 제사장들 무리도 그렇다. 그들은 세겜으로 가는 길에서 살인을 하며 수치스러운 죄악을 저지른다.
10.  이스라엘의 집에서 내가 끔찍한 일을 보았다. 그곳에서 에브라임이 음란한 짓을 하고 이스라엘이 더럽혀졌다.
11.  내가 포로 된 내 백성을 회복시킬 때 유다 네게도 또한 추수할 때를 정해 놓았다.”

 

 

<오늘의 말씀 요약>

 

 

호세아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호소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찢으셨으나 다시 낫게 하시고 살리시며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러니 새벽빛같이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힘써 알며 그분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제사가 아니라 인애를 원하시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 호세아 6:1-11

 

묵상내용(그루터기 선교회)

 

언젠가 북한선교 방문 팀을 이끌고 북중 국경선을 따라 이동하게 되었을 때에 나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접할 수 없었고 볼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정말 북한과 관련된 실제적인 현장 깊숙한 곳까지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새로운 세계와 경험에 대하여 기뻐하기는커녕 두려워하였으며 이런데 까지 안내하고 데려온 나를 원망 하는 듯 했고 분위기는 시종일관 무겁기만 하였다.

 

후에 나는 깨달았다. 그들이 교회에서 단기 선교를 떠날 때 매우 위험한 곳으로 가는 것 때문에 교회에서 보내려 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나온 것과 그래서 시종일관 안전 위주로만 이동하려고 하였다는 것 그리고 아무 사고 없이 돌아가야 하는 부담감으로만 가득했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나의 일방적인 생각과 나의 방식으로 위험성을 뛰어넘는 현장까지 데리고 다녔으니 내가 안내하는 모험적인 코스가 이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들이 떠난 후 나는 여러 가지를 반성했다.

나의 생각과 방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들의 수준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고 거기에 맞추어서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는 것을 때늦은 후회와 반성으로 받아드렸다.

 

또 얼마 전에는 남편과 이혼 직전인 가까운 친척 여동생을 만났는데 이혼 하려는 사유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전혀 교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잠자리를 같이하고 싶어도 자기 방식으로만 덤벼들기 때문에 여자인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먼저 알고 나를 배려해주는 방식으로가 아닌 일방적 자기 생각과 방식으로 사랑한다고 하니 자신은 남편에게 대해서 마음도 몸도 열려지지 않은 채 벌써 수십 년을 살아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정한 사랑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오늘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시로 하나님께 제사하며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생각과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일방적인 생각으로 하나님께 제사하며 섬긴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하나님께는 역겨운 부담이 되었고 전혀 소통도 교감도 없는 일방적이며 형식적인 제사와 섬김이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외친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6:3A]

 

여기서 여호와를 알자고 함은

지식적인 앎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마음이 어떠신지

하나님의 마음의 깊이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앎으로써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반응하자고 하는 것이다.

 

묵상적용

 

창부와 같은 고멜과 결혼하여 하나님의 쓰라린 사랑을 체휼하는 마음으로 창부와 같이 변질된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호세아의 외침의 절정은 아직 늦지 않았으니 너희가 이제라도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르게 섬기는 신앙에 너희 자신들을 세우라고 하는 말씀으로 귀착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르게 섬기는 한 예증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데 그것은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6:6]는 것이다.

 

호세아가 이 말씀을 외치던 당시 여로보암 II 세 시대에는 경제적으로도 풍부하던 시대여서 사람들은 무수한 제물을 가져와 제사 드리며 그 어떤 시대보다 하나님을 열심으로 섬기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러나 그 제사들은 바알의 신당에서 드려지는 것 같은 이교도의 제사와 혼합된 제사로서 자신들의 만족을 위한 제사였으며 제사[예배]와 삶이 괴리된 제사를 위한 제사로써 하나님을 역겨워하게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호세와 선지자를 통하여 전달하시는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알고 거기에 맞게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이다.

 

당시 이교도들이 섬기는 신들은 삶의 내용과 관계없이 자기에게 제사만 드려주기만 하면 만족하였고 그들은 제사의 행위로 신들의 비위를 맞추기만 하면 되었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그런 비인격적 신이 아니어서 내가 진정 원하는 제사가 무엇인지를 밝히시는데

 

그것은 제사 따로 삶이 따로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나의 인애[헤세드:사랑과 긍휼]을 구하는 것처럼 너희 삶 가운데서 인애와 사랑을 베푸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는 것이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를 바로 알고 나를 섬기라고 하시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면서 마음 깊이 닿아지는 것은 오늘 우리[나]의 신앙생활이 여로보암II세 시대의 이스라엘과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그들보다 더 많은 제사[예배]를 드리느라고 주일 낮 예배/ 주일 오후(저녁)예배/수요 예배 /금요 심야기도 예배/매일 새벽 예배까지 합하면 제사[예배]의 횟수에서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예배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드리고 있으며

이 예배의 순서에 나타난 내용들이 무엇인지,

예배 순서의 흐름들을 바로 알고 드리고 있는지

그리고 예배의 내용으로써 깊이를 가지고 드리고 있는지

더불어 나의 예배에서 삶이 반영되며

나의 삶에서 예배가 반영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며

무엇보다 예배보다 예배 이전에 인애를 원하시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시는 그 마음을 헤아리며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나의 예배를 돌아보게 된다.

 

주님!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주님을 바로 알고 예배하며

주님을 섬겨야 하는데

나의 일방적인 생각으로만

주님을 섬긴다고 하지 않았는지요

주님과 아무런 교감도 느끼지 못하는

메마른 예배를 반복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과 아무런 소통도 이뤄지지 않는

형식적 신앙을 답습하지 않게 하시며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같이

예배와 삶 그리고 삶과 예배가 일치된 신앙으로

주님과 생명의 교통을 이루는 신앙과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땅을 적시는 늦은 비처럼 우리에게 임하여 오실 것이라.

그러나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사라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을 보내어 너희를 치고

내 입에서 나오는 말로 너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번쩍이는 번개와 같으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에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성읍이라.

피 발자국으로 편만하도다.

강도떼가 숨어서 사람을 기다리듯이 제사장 무리가

세겜으로 가는 길목에 숨었다가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에서 에브라임은 음란한 짓을 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렵혔느니라.

또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유다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앞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고 권면하셨는데 그런 책망과 경고에 대한 응답으로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께 돌아가자고 외치고 있다.

호세아는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찢으셨으나 낫게 하시고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며, 하나님을 힘써 알면 하나님은 새벽빛 같고 늦은 비 같이 임하실 것이라고 백성들을 설득하고 있다.

성도는 뜻하지 않은 일이나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을 의지하지 말고 그것을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여 아들로 복귀시켜 준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며, 어두운 밤이 지나 새벽이 오듯 어김이 없고 봄비처럼 충만한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며 그 분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최고의 은혜이다.

사춘기 자녀가 자기 때문에 부모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가출한다면 그것을 효도라고 기뻐할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인격적이며 영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제사와 제물은 관계의 결과이지 그것이 관계 자체나 친밀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진심은 담지 않은 채 하나님을 잘 섬기는 척 흉내를 내는 데 급급해서 책망의 대상이 되고 만다.

가인이나 사울 왕의 제사처럼 형식적이고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제사는 참된 제사가 아니다.

예배의 핵심은 사랑이요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진정한 회개는 삶의 변화를 가져와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하나님을 알고 사랑이 담긴 예배를 올바르게 드려야 한다.

하나님이 죄에 대하여 즉각적 심판을 하시지 않고 오래 참아 주신다고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말씀과 예배,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고 삶의 매 순간마다 그 분의 사랑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9~10)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네가 지음을 받을 것이며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하리라.(욥 22:2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겔 18:2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눅 15:10)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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