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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

2025년3월29일(토) (민 6:13~27) 헌신하는 백성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축복

by 방일 2025.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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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6:13~27>  헌신하는 백성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축복

 

 

 

오늘의 찬송(새 315장 내 주 되신 주를)

 

 

 

  <민수기 6:13~27>

 

 

13.  나실인의 법은 이러하니라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날이 차면 그 사람을 회막 문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14.  그는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되 번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와 속죄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와 화목제물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와
15.  무교병 한 광주리와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과자들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들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드릴 것이요
16.  제사장은 그것들을 여호와 앞에 가져다가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고
17.  화목제물로 숫양에 무교병 한 광주리를 아울러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와 전제를 드릴 것이요
18.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 문에서 자기의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
19.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인이 그의 머리 털을 민 후에 제사장이 삶은 숫양의 어깨와 광주리 가운데 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를 취하여 나실인의 두 손에 두고
20.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들 것이며 그것과 흔든 가슴과 받들어올린 넓적다리는 성물이라 다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니라 그 후에는 나실인이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느니라
21.  ○이는 곧 서원한 나실인이 자기의 몸을 구별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헌물을 드림과 행할 법이며 이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하려니와 그가 서원한 대로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법을 따라 할 것이니라

제사장의 축복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말씀 묵상>

 

 

13.  이제 나실 사람으로 헌신한 기간이 끝났을 때 나실 사람에 관한 법이다. 그를 회막 입구로 데려간다.
14.  거기서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는데 1년 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번제물로 드리고 1년 된 흠 없는 암양 한 마리를 속죄제물로 드리고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는 화목제물로 드린다.
15.  그리고 누룩 없는 빵 한 광주리와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은 덩어리들과 기름을 바른 누룩 없는 얇은 빵들과 함께 곡식제물들과 전제물들을 드린다.
16.  제사장은 그것들을 여호와 앞으로 가져가 속죄제와 번제로 드린다.
17.  또한 누룩 없는 빵 한 광주리와 함께 숫양을 화목제물로 여호와께 드린다. 제사장은 곡식제물과 전제물도 함께 드린다.
18.  그러고 나서 회막문에서 나실 사람은 자신의 구별된 머리털을 밀어 낸다. 그는 그 머리털을 화목제물 밑의 불 속에 넣는다.
19.  나실 사람이 구별된 머리털을 민 후에 제사장은 삶은 숫양의 어깨와 광주리 속의 누룩 없는 빵 하나와 누룩 없는 얇은 빵 하나를 가져다가 그 사람의 손에 놓아 준다.
20.  그러고 나서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 그것들을 요제로서 흔들어 바쳐야 한다. 그것들은 흔들어 바친 가슴과 들어 올려 바친 넓적다리와 함께 거룩하므로 제사장의 몫이다. 그 이후에야 나실 사람은 포도주를 마셔도 된다.
21.  이것은 나실 사람에 대한 법이다. 그리고 나실 사람으로 헌신할 때 바치는 것 말고도 예물을 더 바치기로 맹세했다면 그는 나실 사람에 대한 율법에 따라 자신이 한 맹세대로 실행해야 한다.’”

제사장이 하는 축복의 말씀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3.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라. ‘너희는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해 말하여라.
24.  여호와께서 너를 축복하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비노라.
25.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네게 비추시고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비노라.
26.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너를 향해 드시고 네게 평강을 주시기를 비노라.’
27.  그렇게 그들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릴 것이다.”

 

   

<오늘의 말씀 요약>

 

 

나실인은 구별한 날의 기한이 차면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고 소제와 전제와 함께 화목제를 드립니다. 나실인은 회막 문에서 머리털을 밀어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넣고 요제와 거제를 드린 후 그 성물을 제사장에게 돌립니다. 그 후에 나실인은 포도주를 마실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전할 말을 모세에게 이르십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게 복 주시고 그들을 지키기 원하시며, 그들에게 얼굴을 비추사 은혜와 평강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론과 그 아들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면, 그분이 이스라엘에게 복 주겠다 하십니다.

 

 

 

작정 기간이 만료된 나실인의 제사에서 배우는 것

 

 

▼ 민수기 6:13-21

 

묵상내용(그루터기 선교회)

 

구약에서 있었던 나실인의 규례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신다.

 

본문은 나실인이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린

모든 날 수가 끝났을 때

회막으로 가서 드리는 제사가 소개되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이 나실인의 제사가 레위기 8장에 나오는

제사장의 위임식에 버금가는 특별한 제사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는 기간을

성공적으로 마친 나실인은 이제부터 레위인이나

제사장들처럼 자신을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헌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공개적이며 공식적으로 알리는 제사로 이해하게 된다.

 

이미 앞선 말씀에서 읽은 인구 조사의 이야기처럼

이스라엘 12지파 중 전투에 나갈만한 전투요원들이

603,550명 이라고 했고(민1:46)

회막의 봉사에 참여할 만한 레위인의 숫자는

8,580 명 이라고 했으니(민4:48)

거의 80(100)분의 일에 불과한

회막 봉사자들의 수효를 감안할 때

고도의 영적 거룩을 요구하는 회막 봉사자들은

언제나 숫자가 부족했을 것이고

따라서 레위인이 아니어도 특별히 자신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자신을 드릴 헌신자들이 필요했는데

이런 나실인의 제도를 통하여 가능했던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오늘의 말씀을 잘 못 이해하여

이제 나실인으로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는 기간이 끝났으니

세속으로 돌아가서 맘대로 살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제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는 기간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심직한 헌신의 제물이 되었으며

이제부터는 적어도 제사장, 레위인들의 거룩에 준하는

삶으로 자신을 드리게 되는 것을 인치는 제사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나실인으로서 자신의 몸을 구별한 기간이 끝나서

이제부터는 포도주도 마실 수 있다고 허용하는 구절은

어떻게 받아 드려야 하는가(?) 의문이 생기게 되는데

이는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봉사할 때 외에는

포도주를 마실 수 있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레10:9]

 

오늘 우리 시대에도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헌신하여

목회나 선교에 올인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평신도 사역자로서 동일하게 자신을 드리는 분들도 있는데

오늘의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자신을 성직에 헌신하는 분들이나

아니면 평신도 사역자로서 중도에 각성된 바가 있어

자신을 헌신의 제물로 드리기 원하는 사람들이나

모두 동일하게 같은 거룩과 헌신이 요구된다는 것을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구약에서는 이처럼 제사장이나 레위인으로 헌신된 사람들과

또 여기에 더해 나실인으로 자신을 드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신약에 들어와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 왕같은 제사장들이 된 모든 성도들이

이러한 나실인의 삶으로 부름받고 있음을 감한할 때[고후6:17]

 

오늘의 말씀이 보여주고 있는 기간이 찬 나실인의 제사는

나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나의 몸을 주님께 드려야할 헌신의 제사이며

본격적인 헌신의 출발이 되어야 하는

제사[예배]가 되어야할 것을 마음 깊은 교훈으로 받아 드린다.

 

그동안 무수하게 많은 헌신예배를 드렸으나

오늘의 말씀이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자신을 거룩하게 준비하는 기간도

충분히 제대로 가지지 못하면서

형식으로 치루는 헌신예배가 되었던 것들을 회개하게 된다.

 

오늘의 말씀이 보여주는 기간이 만료된 나실인의 제사가

대제사장의 위임식에 버금가는 제사라는 점에서

내가 이러한 제사의 문자적 답습은 아니어도

적어도 나실인으로 자신을 드리는 사람이 가졌던

그 거룩함과 헌신의 정신으로

나도 자신을 주님께 헌신의 제물로 드려야 한다는 것을

이 아침 마음 깊은 교훈으로 받아 드린다.

 

 

오늘도 이 사랑 때문에 살아간다고 말해 주십시오

 

▼ 민수기 6:22-27

 

묵상내용

 

매 주일 마다 말씀 사역을 위하여 나가는 시골 교회에

"초롱이"라고 이름을 준 점박이 강아지 한 마리가 있다.

항상 줄에 매어 있는 것이 안쓰러워서

내가 갈 때 마다 풀어서 산으로 데려가는데

팔짝 팔짝 뛰면서 이 곳 저 곳을 헤집고 다니다가도

갑자기 나에게 달려와 납작 엎드리면서 만져달라고 하는데

아마도 이놈은 자기를 향한 나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초롱이의 콧등어리를 긁어주기도 하고

입 주둥이를 내 손아귀에 넣고 주물러주기도 하면서

초롱이의 눈을 함께 마주쳐 바라보게 되는데

초롱이의 눈빛에서 풍겨지는 그윽한 행복감을 보면서

나도 주님께 향한 나의 마음을 표시하게 된다.

 

주님!

내가 초롱이를 이뻐해주는 것처럼

주님의 인격적 피조물인 나를

주님도 이렇게 이뻐해 주시나요(?)

 

사람에게 속하여 사람의 관할을 받는 동물들이

자기의 주인인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격적 피조물인 사람은

자기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데

오늘의 말씀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그윽하고 가득한 것인지 가득 담겨 전달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은

개인적으로 뿐 아니라

더욱 하나님의 백성 이라는 집단적 대상을 향해

넘쳐흐르고 있음을 알리시기 위해

아론과 아론의 후손 제사장들에게 축복의 명을 전하시며

 

내가 나의 백성, 너희들을 이렇게 사랑하고 보호하며

내가 이렇게 너희를 축복한다 말하라고 명하신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6:23-26]

 

보통 아론의 축복으로 불리어지는 이 축복의 기도[축도]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혜와 평강을 전달하고 있는데

이제 막 광야의 행진을 앞두고 있는

이스라엘 광야 교회에 첫 번째로 전달되었고

 

신약 교회로 들어와서 이방인의 사도로 헌신한 바울이

지중해 연변에 산재한 각 각의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편지의 말미에 항상 이 축복을 전달하고 있음을 보게 되며

오늘 우리 시대에 드려지는 모든 예배의 마지막 순서는

이 축복의 기도[축도]로 마감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축도 인데

자기 백성의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실 수가 없는

그윽한 사랑의 마음을 이렇게 전달해 오시는 것이며

그들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보호 받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으로 승리하며

힘차게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마음이 이 축도에 담겨 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 속에 담겨 있는

찬양/고백/기도/말씀/헌금/축도 등의 순서들은

이 한 가지, 한 가지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는 은혜의 수단이요 방편들로써

한 마디로 예배는 하나님 은혜의 종합 셋트라고 할 만한데

그 중에서도 이 예배의 순서를 마감하는 축도에는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녹아 있다는 것을

오늘 주신 말씀 가운데서 넉넉히 짐작하고 남는다.

 

특별히 후렴처럼 두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하나님 사랑의 표현으로써

그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표현해 오신 것은

 

오늘 메마른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축복이 되는지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 얼굴을 내게 향하여 비쳐주시는 그 사랑 때문에

성도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고 고난을 당할 때에도

넉넉히 승리하며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묵상적용

 

나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강아지, 초롱이의 눈을 마주보며

내가 내 사랑의 눈빛을 전달하고

초롱이는 이 사랑의 눈빛 때문에 그윽한 행복에 젖는 것처럼

오늘 주신 이 축복의 말씀들은

하나님은 나에게 관심이 있으실까(?)

하나님은 정말 나를 사랑하실까 (?)

하나님은 나를 축복 하시는가 (?)

 

이 하나님 사랑과 축복에 목말라하고 사모하는 나에게

그리고 이 말씀을 함께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도

더 이상의 설명과 해설이 필요 없는

절대 은혜, 절대 사랑,

절대 축복의 해답 인 것을 마음 깊은 감사로 받아 드린다.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 아들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내어 주셨고

아버지께로 부터 오신 아들을 통하여

우리는 이 사랑을 알게 되었으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다.[롬5:5]

 

오늘도 이 사랑 때문에

내가 살아간다고 말해 주십시오.

 

주님!

 

아침이면 변함없이 떠오르는 태양처럼

그리고 나의 얼굴 가득 쏟아지는

저 밝은 아침 햇살처럼

나의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변함없이 베풀어주시는

주님의 은혜와 평강을 힘입어

오늘도 광야 같은 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나실인이 서원 기간을 만료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때 하는 의식과 절차에 대한 설명입니다.

 

시작도 끝도 하나님의 뜻

 

나실인은 서원의 헌신을 시작할 때나 그 시간을 보내는 중에나 또한 헌신의 기간을 마칠 때에도 하나님의 정하신 법을 따라야 했습니다.

본문에는 나실인이 서원기간을 마칠 때 지켜야 할 규정을 자세하게 소개합니다.

이 때 나실인이 드리는 제사는 번제, 소제, 속죄제, 화목제로 그 종류와 분량은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위임 받을 때 드렸던 제사와 거의 같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지시대로 많은 분량의 제물을 드렸는데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은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해야 했습니다.

 

새로운 시작

 

나실인은 그의 서원 기간이 끝나면 제사를 지내고  머리를 깎아서 화목제물 아래 불에 태우고 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서원 기간을 잘 견뎌낸 사람은 일상으로 돌아가도 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외모는 구별되지 않더라도 그의 심령은 이미 하나님 앞에 구별된 것입니다.

그는 이전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훈련이 필요합니다. 영적 훈련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죄와 싸우는 나실인, 일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나실인들이 많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일정기간에만 머리를 기르는 나실인이 아니라 머리를 깎고 세상으로 나가는 나실인입니다.

예배당에 모여 예배드리고 나서 세상에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파송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에서만 믿음있는 사람이 되지 말고 일상에서도 구별된 삶을 사는 나실인이 되어야 합니다.

시작도 끝도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예수님만 따르는 자, 바로 그 사람이 이 시대의 나실인입니다.

 

 

'제사장 축복문'이라고 불리는 기도문으로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시면서 아론과 그의 아들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축복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셔서 아예 축복기도문까지 주시면서 그대로 축복하면 내용 대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이 말씀 속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시고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멘으로 받아야 하는데 아멘은 하나님의 복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과 말씀대로 이뤄지기를 바라는 고백이며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고 구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내용

 

첫째, 지켜주시는 복으로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광야를 지나는 동안 보호받는 것은 정말 큰 복입니다.

우리도 매순간 영적 전쟁에 노출되어 있는 광야 인생길에  하나님의 보호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은혜 베푸시기를 원한다는 말씀인데 은혜는 포괄적인 개념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좋은 것을 은혜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번째는 평강입니다.

평강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고자 하시는 최고의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

 

축복하는 사람은 제사장이지만 복을 주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축복의 구절마다  여호와께서라는 말을 붙여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라고 기도하는데 내용은 이해하지만 말을 분명히 하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축복한다는 말이 맞지만 하나님은 복을 내려 주신다고 하는 것이 바른 표현입니다.

 

공식적인 예배에서는 교회의 질서를 위해 아무나 이런 축도를 하면 안 되지만 개인기도나 가정에서 자녀를 축복할 때는 많이 할수록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충분히 누리시고 많이 축복하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요 특권입니다.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잠 4:19)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4)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5~6)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14)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7~18)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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