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 묵상(열왕기상,하,역대상,하)

2024년7월27일(토) (왕하 16:10~20) 하나님의 규례를 가볍게 여기는 죄

by 방일 2024. 7. 24.
728x90

 

 

 

<열왕기하 16:10~20> 하나님의 규례를 가볍게 여기는 죄

 

 

 

오늘의 찬송(새 32장 만유의 주재)

 

 

 

 

10.  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 왕이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더니
11.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행하여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든지라
12.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 제단을 보고 제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13.  자기의 번제물과 소제물을 불사르고 또 전제물을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14.  또 여호와의 앞 곧 성전 앞에 있던 놋제단을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제단 북쪽에 그것을 두니라
15.  아하스 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침 번제물과 저녁 소제물과 왕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모든 국민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다 이 큰 제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라 오직 놋제단은 내가 주께 여쭐 일에만 쓰게 하라 하매
16.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17.  아하스 왕이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그것을 두며
18.  또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옮겨 세웠더라
19.  아하스가 행한 그 남은 사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  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말씀 묵상>

 

 

10.  그러자 아하스 왕이 다메섹으로 가서 앗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났습니다. 그는 다메섹에 있는 제단을 보고는 제단의 모형도와 세밀한 구조를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습니다.
11.  그러자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것대로 제단을 만들었고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단 건축을 다 끝내 놓았습니다.
12.  아하스 왕은 다메섹에서 돌아와 제단을 보고 다가가 그 위에 제물을 드렸습니다.
13.  아하스는 번제와 곡식제사를 드렸고 전제를 붓고 화목제의 피를 제단 위에 뿌렸습니다.
14.  그는 또한 여호와 앞에 있었던 청동제단을 성전 앞, 곧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서 가져다가 새 제단 북쪽에 두었습니다.
15.  그러고 나서 아하스 왕은 제사장 우리야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습니다. “저 새로 만든 큰 제단 위에 아침 번제물과 저녁 곡식제물과 왕의 번제물과 곡식제물과 이 땅 모든 백성들의 번제물과 곡식제물과 전제물을 드려라. 번제물의 피와 희생제물의 피를 모두 이 제단에 뿌려라. 이 돌제단은 내가 여호와의 말씀을 구할 때 쓸 것이다.”
16.  그리하여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 왕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17.  아하스 왕은 청동대야 받침의 옆면에 있는 청동 판을 떼어 내고 청동대야를 거기에서 옮기고 청동소가 받치고 있는 청동바다를 떼어 내 돌 받침 위에 얹었습니다.
18.  그는 성전 안에 지어진 안식일에 이용하는 현관을 치웠고 앗시리아 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여호와의 성전 바깥에 있는 왕의 출입로를 없애 버렸습니다.
19.  아하스의 다른 일들은 유다 왕들의 역대기에 기록돼 있습니다.
20.  아하스는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고 다윗 성에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고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뒤를 이어 왕이 됐습니다.

 

 

<오늘의 말씀 요약>

 

 

아하스가 앗수르 왕을 만나러 다메섹에 가서 그곳 제단 양식을 보고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냅니다. 우리야가 그대로 제단을 만드니 아하스는 모든 제사를 새 제단에서 드리게 합니다. 또한 성전 앞에 있던 놋 제단을 새제단 북쪽에 두고, 앗수르 왕을 두려워해 낭실을 옮겨 세웁니다.

 

 

 

타락 중에 가장 무서운 타락

 

 

▼ 열왕기하 16:10-20

 

묵상내용(그루터기 선교회)

 

1. 타락 중에 가장 무서운 타락 [16:10]

 

아하스라는 왕은 하나님의 나라요 백성으로서 존립 의미를 가지는 유다 왕국의 정체성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이해가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 나라가 어떻게 시작되어서 어떻게 지금까지 이르렀으며 어떻게 진행되어 나가야 하는 나라인가에 대한 이해와 감각이 없는 것 같다.

 

그의 눈에 크게 보여지는 것은 이 나라의 진정한 보호자시며 왕이 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당시 고대 근동지방의 새로운 실력자로 부상한 앗수르를 제국의 디글랏 빌레셀 뿐이었고 그는 그에게 기대어 그나마 유다를 지켜내기 위해서 심지어는 앗수르의 신들을 받아 드리며 그 나라의 신전 제사제도까지 고스란히 유다 왕국으로 가지고 들어온다.

 

그리고 심지어는 이스라엘 여호와 신앙의 상징처럼 성전 마당에 놓여있는 번제 놋제단까지 철거시키고 그 자리에 앗수르의 수도 다메섹에서 가지고 온 우상의 제단을 설치하며[16:14] 그 제단에서 온갖 제사를 드렸으니 [16:15]

 

이것은 타락 중에 가장 무서운 종교적 타락으로써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앗수르의 신들[니스록/식굿/마르독] 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무서운 종교적 타락으로 변질된 사람이 된 근저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보다 앗수르의 신이 더 크고 위대하며 자신을 보호하고 복을 줄 수 있는 신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역대기 저자는 밝히고 있다. [대하28:23]

 

이것은 마치 오늘 우리 시대에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이 더 잘살고 예수 믿지 않아도 부요하고 잘 나가며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예수 믿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생각하고 예수를 버리며 세상으로 나가버리는 배교와 같은 것이며 성령의 인도를 저버리는 성령 훼방 죄와 같은 종교적 타락으로써 그를 다시 구원할 복음은 더 이상 없게 되는 것이다. [히6:6]

 

아하스는 고대 근동지방의 새로운 실력자로 부상한 앗수르 제국의 힘과 위용을 보았을 때 그리고 그 앞에 아람이 무너지며 북 왕국 이스라엘이 무너져 갈 때 그는 하나님의 세계 경영 가운데서 이루어 가시는 이런 국제 정세의 판도를 읽어내며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나라를 견고히 했어야 했는데

 

그의 눈에는 앗수르 왕 디를랏 빌레셋이 하나님의 자리에 있는 것 처럼 보였고 무서운 종교적 타락으로 변질된 그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셋의 신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게 되었으니 이는 실로 하나님을 괴롭게 한 것이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게 하고 고통으로 몰아간 왕이 되었다[사7:13]

 

그러나 아하스 왕의 무서운 종교적 타락을 보여주고 있는 오늘의 말씀에서 가장 마음 아프게 닿아지는 것은 그가 성전과 번제단 사이에 놓여있는 열두 받침 물두멍의 옆판들을 떼어내고[16:17] 성전과 그 시설물들을 우상숭배에 편리하도록 고치며 성전 기구들의 위치를 함부로 바꾼 것인데 [16:18] 이는 모세 이후로 내려온 성전 구조의 질서를 완전히 뒤집어엎는 격이 되고 말았다.

 

그가 성전 제사의 중요한 성물인 물두멍의 옆판이나 받침대들을 떼어 낸 것은 아마 디글랏 빌레셀에게 보낼 예물/공물을 충당하기 위해서라고 보여지는데 이는 한 번 종교적 타락으로 하나님을 등지면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도 없어지고 얼마든지 무서운 죄악들을 저지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행위로 이해하게 된다.

 

진정 두려워해야할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갖지 못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데 사용 되어야 할 성물까지 파괴하고 뜯어내는 아하스의 이런 행위는 사람의 타락 중에 가장 큰 타락으로써 종교적 타락의 무서움을 잘 보여준다.

 

주님 !

타락 중에 가장 무서운 타락으로써

아하스 왕의 종교적 타락을 봅니다.

혹 도덕 윤리적으로 무너지고 망가져서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있거니와

이런 종교적 타락에 내몰려서

내 삶의 존재 이유와 의미가 되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리에까지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묵상적용

 

2. 죄악에 일조하는 나약한 성직자가 주는 교훈 [16:1,16]

 

아하스의 종교적 타락이 얼마나 무서운 자리에까지 떨어졌는가를 보여주는 오늘의 말씀에서 열왕기 저자는 이러한 타락을 막아내고 교도해야 할 제사장이 도리어 왕의 타락에 일조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하스의 타락에는 제사장 우리야의 죄도 한 몫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6:10-11]

그는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보다 왕의 신하의 직분을 더 사랑한 것 같으며 이런 성직자의 부패는 온 나라까지 망치게 하는 죄가 되는 것을 보게 된다.

 

더불어 유다 왕 아하스는 하나님보다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두려워했고 당시 성전 제사장 우리야는 하나님보다 아하스 왕을 두려워함으로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자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눅12:4-5] 성직자들이 얼마나 부패한 자리에 떨어질 수 있는가를 보게 된다.

 

우리나라 군사 독재시절에 불의한 방법으로 정권을 잡은 권력자들이 국민들의 지지와 여론의 호도를 얻기 위하여 성직자들을 초청하여 나라와 정권에 대한 축복기도를 하게 하였는데 이 때 이 나라의 존경받는 목사님들이 여기에 불려가 예배를 드려주고 축복기도를 해 줌으로 불의한 군사독재에 일조하게 되고 이것은 더 나가서 정의를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얼마나 혐오스런 일이 되었는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열왕기 저자는 아하스 왕의 우상숭배와 종교적 타락이 또한 당시의 제사장 우리야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한 시대의 하나님의 종들로 세움을 받는 사명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왕과 제사장이 함께 짝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악으로 몰아간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자기 백성의 진정한 보호자시며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눅12:4-7]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자가 되시는 주님 !

 

주님을 섬기는 사명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사람을 두려워함으로

나의 양심을 파는 자리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양심을 팔아 굴욕의 떡을 먹는 것 보다

차라리 고난의 길을 가더라도

믿음의 의리를 지킬 수 있게 하옵소서.

 

 

 

그러자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으로 갔다가

그곳에 있는 제단을 보고는,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상세히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습니다.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제단을 완성하였습니다.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 제단을 보고

제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하스는 (그 제단에서) 번제물과 소제물(곡식예물)을 불사르고,

또 전제물(부어드리는 제물)을 붓고,

수은제(화목제) 짐승의 피를 그 제단 위에 뿌렸습니다.

그는 또 여호와 앞에 있던 놋 제단을 성전 앞,

곧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서 가져다가 새 제단 북쪽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하스 왕은 우리야에게 명하였습니다.

“아침 번제물과 저녁 소제물과, 왕의 번제물과 소제물과,

이 땅의 모든 백성이 드리는 번제물과 소제물과 그 전제물을 다 이 큰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제단 위에 뿌려라.

이 놋 제단은 내가 여호와께 물어볼 일이 있을 때에만 쓸 것이다.”

그리하여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 왕이 명령한 대로 행하였습니다.

아하스 왕은 성전에서 물을 운반할 때 사용했던

물두멍 받침의 옆판(놋쇠 테두리)을 떼어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 바다를 놋 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두었습니다.

아하스 왕은 또 앗수르 왕에게 충성을 보이기 위해

여호와의 성전에 만들어 둔 왕의 안식일 전용 통로와,

여호와의 성전 바깥에 있는 왕의 전용 출입구를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아하스가 행한 나머지 모든 일들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하스가 죽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잠드니 다윗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 되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아하스는 자기를 도와준 앗시리아의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으로 갔다가 그곳의 신전을 보고 제단의 구조와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고 우리야는 왕이 돌아오기도 전에 서둘러 양식대로 제단을 만들고 과거에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사용하던 기구들을 옮겨 거룩한 성전 질서를 파괴하고 만다.

당시 앗수르가 속국의 내정을 간섭하거나  종교 생활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아하스가 스스로 제단을 바꾼 것은 앗시리아 왕의 환심을 사서 그 세력을 등에 업고 정치적 기반을 다지려고 하는 아하스 왕의 야심과 왕의 명령이라면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순종한 우리야 제사장의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반드시 사람을 두려워하게 마련이다.

성경은 왕과 백성들이 느낀 두려움을 숲이 바람에 일렁거리는 것 같았다고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결과라고 하겠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던 아하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두려워하게 된다.

아하스는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우상 제단을 성전에 두고 모세법에 명한 놋제단을 다른 곳으로 옮겨놓는다.

아하스가 지금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눈에 보이는 앗수르 왕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역사를 주관하시고 목숨을 좌우하시는 하나님이어야 한다.

끝내 회개하지 않는 아하스는 그냥 죄에 내버려 두시고 때가 되어 죽음으로 심판하신다.

가정에서나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믿지 않는 가족이나 상사가 우리 신앙에 맞지 않는 일을 하라고 할 때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갈 때 우리 삶에 인간적 두려움이 설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4~5)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 6:6)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