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 묵상(여호수아,사시기,룻기,사무엘상,하)

2023년5월26일(금) (삼하 22:17~28)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공의의 하나님

by 방일 2023. 5. 24.
728x90

King David in prayer,Pieter de Grebber,1635-40,Museum Cathriinecovent,Utrecht🇳🇱 ​

 

 

<사무엘하 22:17~28>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공의의 하나님

 

17.  그가 위에서 손을 내미사 나를 붙드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18.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강했기 때문이로다
19.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20.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
21.  여호와께서 내 공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으니
22.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함으로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23.  그의 모든 법도를 내 앞에 두고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24.  내가 또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의 눈앞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26.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7.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이다
28.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
 

17.  "He reached down from on high and took hold of me; he drew me out of deep waters.
18.  He rescued me from my powerful enemy, from my foes, who were too strong for me.
19.  They confronted me in the day of my disaster, but the LORD was my support.
20.  He brought me out into a spacious place; he rescued me because he delighted in me.
21.  "The LORD has dealt with me according to my righteousness; according to the cleanness of my hands he has rewarded me.
22.  For I have kept the ways of the LORD; I have not done evil by turning from my God.
23.  All his laws are before me; I have not turned away from his decrees.
24.  I have been blameless before him and have kept myself from sin.
25.  The LORD has rewarded me according to my righteousness, according to my cleanness in his sight.
26.  "To the faithful you show yourself faithful, to the blameless you show yourself blameless,
27.  to the pure you show yourself pure, but to the crooked you show yourself shrewd.
28.  You save the humble, but your eyes are on the haughty to bring them low.

<말씀 묵상>

17.  주께서 높은 곳에서 손을 뻗어 나를 꼭 붙잡아 주셨으며 깊은 물속에서 나를 건져 내셨습니다.
18.  주께서 강력한 내 적들에게서,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를 구해 내셨습니다. 그들은 나보다 강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19.  그들이 내 재난의 날에 나를 막아섰지만 여호와께서 내 도움이 되셨습니다.
20.  주께서 나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분이 나를 기뻐하셨기에 나를 건져 주신 것입니다.
21.  여호와께서 내 의로움에 따라 상을 주시고 내 손이 깨끗했기에 내게 보상해 주셨습니다.
22.  내가 여호와께서 명하신 길을 지켰고 내 하나님에게서 돌아서서 악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23.  나는 주의 모든 법을 지켰고 주의 명령을 멀리한 적이 없습니다.
24.  나는 주 앞에 흠 없이 살고 내 자신을 지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25.  그래서 여호와께서 내 의로움에 따라 보상해 주시고 여호와 보시기에 깨끗했기에 갚아 주신 것입니다.
26.  신실한 사람들에게는 주의 신실함을 보이시고 흠 없는 사람들에게는 주의 흠 없음을 보이시며
27.  순결한 사람들에게는 주의 순결함을 보이시고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들에게는 주의 빈틈없음을 보이십니다.
28.  주께서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들을 낮추십니다.

 

<오늘의 말씀 요약>

 

하나님은 많은 물에서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다윗을 건지셨습니다. 또 재앙의 날에 다윗에게 의지가 되시고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도를 지키고 그분을 떠나지 않으며 죄악을 피한 다윗의 의대로 갚으셨습니다. 주님은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는 낮추십니다.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

 

 

[이경섭 칼럼]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출처 - 크리스챤투데이. 2023.03.17.

 

◈ 사랑과 공의

 

‘공의(justice, 公義)’ 하면 일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 같은 부정적인 개념만을 떠올리고, 그 이상은 나아가지 못한다. 이는 ‘공의’에 대한 편견이고, 신·구약 전체의 ‘원만한 공의’ 개념엔 이르지 못한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공의’의 뿌리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랑’ 없는 ‘공의만의 공의’란 없다. 실제로, 하나님이 무죄했던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는 ‘선악과 율법’을 주셨던 것은 그들을 사랑한 때문이다.

 

곧 그들을 ‘공의’안에 둠으로 그로 하여금 ‘경건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랑의 발로’였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피조물다움(혹은 피조물의 분수)을 견지함’으로 ‘경건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공의롭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들이 복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으로선 당연한 일이었다(만일 공의롭지 못한 자들을 하나님이 축복하면 하나님이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실제로 그들이 ‘공의’를 준수하여 ‘피조물다움’을 견지했을 때, 창조질서가 구현되어 그들이 거한 ‘에덴’은 ‘복락원(Paradise Regained, 復樂園)’이 됐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공의(율법)’을 저버림으로 ‘피조물다움(피조물의 분수)’를 잃었을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서 떠났고, 창조질서는 깨어져 ‘에덴’은 ‘실락원(Paradise Lost, 失樂園)’이 됐다.

 

또 반대로 ‘사랑’ 하면 ‘무조건적인 용납’, 혹은 ‘한없는 부드러움’만 연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 ‘부드러운 사랑’ 안엔 ‘딱딱한 공의’도 함께 있으며, 이 ‘공의’가 ‘사랑을 사랑되게’ 한다.

 

‘사랑’에 ‘공의’가 결여되면 그것은 ‘사랑(愛)’이 아닌 ‘해악(害惡)’이다. 이는 부모가 자녀들을 ‘무절제’하게 사랑하므로 그의 자녀들을 망치는 것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성경이 ‘사랑’에 ‘공의’를 포함된 것도 이런 사랑의 왜곡을 막기 위함이다.

 

소위 ‘사랑 장(章)’으로 일컬어지는 ‘고린도전서 13장’엔 ‘사랑은 오래참고(4절)’라는 말씀과 함께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6절)’는 말씀이 포함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곳에선 더 진일보하여 ‘공의의 징계(disciplin, 懲戒)’를 ‘사랑의 증표’로 제시하기까지 한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히 12:6)”.

 

이 ‘징계’는 죄인에 대해 율법이 의미하는 바 ‘심판의 공의’가 아닌 사랑하는 자를 바로 세우기 위한 ‘훈육적 공의’이다(우리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심판’과 ‘사랑의 징계(훈육)’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도 ‘공의’를 요구받는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 한다’면 그것이 ‘계명 준수(공의)’로 발현되기를 요구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일 5:3)”,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덧붙여,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인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 때 ‘공의’ 50프로, ‘사랑’ 50프로 같은 ‘초등 산술’ 개념을 떠올리지 않기를 바란다. ‘공의’와 ‘사랑’을 백분율(percentage)화할 수 없다. 하나님껜 전부(全部) 사랑이고 전부(全部) 공의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랑과 공의’의 ‘완전한 구현’이며 ‘그것의 완벽한 표상’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9-10)”.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 ‘그의 사랑’이라면, ‘당신의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것’은 ‘그의 공의(公義)’임을 말한 것이다.

 

◈타락 전 공의와 타락 후 공의

 

범죄 전 ‘무죄한 아담’은 공의(율법)을 완전히 준수했다. 그러한 그의 ‘공의(율법) 준수’가 ‘그의 삶의 안전망’이 됐고 그에게 ‘완전한 지복(至福)’을 갖다 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무죄한 상태에서 계속 ‘율법의 의무’를 져 나갔다.

 

그가 무죄자로 있었을 때 ‘율법의 의무 아래 있었다’는 것은 ‘그가 율법의 정죄 아래 있었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는 그의 완전함으로 인해 율법이 그를 정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죄 후엔 그 양상이 달라졌다. 범죄 전과는 달리 그것은 ‘그가 율법의 정죄 아래 있다’는 의미가 됐고, 이후 더 이상 ‘율법’에 의거한 ‘완전한 삶’을 살 수 없게 됐다. 이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죄이기 때문이다.

 

이전 무죄했을 땐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지복(至福)이고, 계속 율법 아래 머무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면, 이제 ‘저주의 율법에서 해방되는 것’이 그의 목적이 됐다. (이처럼 ‘무죄자가 율법 아래 있다’는 말과 ‘죄인이 율법 아래 있다’는 말은 정반대의 의미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자비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율법에서 해방됐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이제 그가 의지할 것은 ‘율법’이 아닌, ‘믿음’이다. ‘그의 완전함’도 더 이상 ‘전자(율법)’가 아닌 ‘후자(믿음)’에 의존한다. 차후에라도 만일 그가 ‘믿음’이 아닌 ‘율법’에 의존한다면(율법 아래 들어간다면) 즉시 그는 율법의 저주에 빠뜨려진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에서 자유함을 받았다’면, 다신 ‘율법 아래로 들어가 저주를 자초하지 말라’는 뜻이다. 죄인이 ‘율법 아래’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자기의 분수를 망각한 처사이다.

 

끝으로 ‘사랑이 공의를 포괄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태초에 아담으로 하여금 ‘선악과 언약’을 지켜 ‘피조물 됨’을 견지하도록 한 것도,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는 공의를 시행하신 것도 인간을 축복하고 살리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발로였다.

 

그것의 상징적인 말씀이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이다. 하나님이 ‘공의’가 아닌, ‘사랑’으로 정의됐다. 이처럼 ‘사랑’이 ‘공의’를 포괄했기에 죄인에게 소망이 있게 된 것이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

 

 

그가 위에서 보내사 나를 취하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힘센 연고로다.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나를 더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을 내려주시고,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이렇게 내게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하여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 모든 규례를 내 앞에 두고,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내가 또 그 앞에서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이다.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

 

 

인생은 수많은 경험과 함께 여러 가지 곤경과 생로병사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깊은 물속에 잠겨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긴 터널과 같은 상황을 경험을 하며 살아갈 때도 있다.

참으로 생애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극한 고통을 찾아오면 어디에도 빛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을 맛보게 된다.

이 어둠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고 또 쳐 보지만 몸은 점점 더 깊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고 만다.

오히려 모든 힘을 다 쏟고 이제 소망이 없다고 여겨질 때, 오직 죽음밖에 생각할 수 없을 때, 바다 끝에서 우리를 기뻐하시며 기다리고 품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말씀과 함께 살아계시고 인격적이신 하나님을 친히 경험하며 사는 나의 믿음이 되길 소망한다.

분명 하나님이 때로는 잔잔하면서도 역동적인 하나님을 우리의 삶 속에서 친히 체험하며 감사하는 믿음의 삶으로 인도해주시리라 확신한다.

 

인생의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 가정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긍휼하심으로 늘 평강으로 인도해 주시고,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가정을 이루게 하시며, 두 아들의 장래가 주님의 믿음 안에서 소망과 꿈을 키워가도록 하나님의 넘치는 지혜와 도우심으로 이끌어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과 살아계심의 역사가 삶의 현장에서 온전히 드러나게 하소서.

특별히 큰 아들을 향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직장에서 자신의 꿈과 비전을 마음껏 펼치며 겸손히 섬겨가며 실력을 키워가도록 늘 함께해 주시고, 작은 아들의 직장에서 능력과 인품을 인정 받을 수 있도록 건강과 지혜로 함께 하시고, 두 아들의 장래의 배우자를 믿음 안에서 예비해주시고, 우리집 장막을 더욱 넓혀주는 축복이 임하여 주시며, 우리 가정이 구원과 축복과 은혜와 회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기도가 더욱 깊어지고 하나님의 비전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정을 통해 날마다 이루어가게 하시며, 자신의 소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가지 않게 하소서.

창립50주년을 맞는 우리교회가 말씀과 기도로 날마다 거듭나게 하셔서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가게 하시며, 건축위원회 조직과 운영이 하나님의 지혜로 믿음과 마음을 모으게 하시며, 새로운 항존직선거를 통해 하나님의 예비하신 신실한 일꾼을 선정하게 하소서.

키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과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능히 이겨내도록 이 나라를 위로하시며 속히 회복하도록 구원과 도움이 손길이 임하여 주옵소서. 

또한 우리 대한민국이 참으로 자신의 욕심과 이념으로 갈라진 마음을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로 통합하며, 공의와 진실로 다스려지는 이 나라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주장하시며, 다음세대가 꿈과 비전을 이루어가도록 교육하게 하시고, 모든 백성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하소서. 

화장실 누수와 함께 가정이 온전히 회복되도록 모든 여건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게 하시고, 한 주간도 가정이 믿음과 사랑으로 회복되고 날마다 서로 소통하고 행복한 날들을 보내게 하소서. 아멘.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https://youtu.be/xNnvmFCAXsA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