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 윤동주 (2025.4.19.)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했던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유고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 아마도 시인은 교회 첨탑 높이 달린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를 지려고 마음이 괴로워했던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인간으로서 청년 예수를 생각하고 있었으리라.
그러기에 청년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릴 때에도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처절한 기도를 드리면서 이 십자가의 잔을 과연 마셔야 하는가 생각하며 인간적 갈등과 외로움으로 간절히 외치고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 십자가의 사건이 자신만의 희생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위한 큰 사랑임을 믿고 하나님께 절규하며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서 늘 제자들에게도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담대히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도 역시 지금 예수님처럼 인생의 괴로움과 어두움에서 목숨을 내밀며 조용하고도 겸손히 십자가를 지고 싶은 뜨거운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오늘 이 세상이 좌우로 갈라져 한 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어둡고 힘든 날들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어떻게 분명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지 다시 한 번 깊이 돌아보아야 하리라 생각한다.
<함께 생각하는 하나님 말씀>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태복음 16장 24~25절)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장39절)
<Sheila Ryan - The Evening B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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