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15~25> 사랑을 회복하고 목양의 사명으로
오늘의 찬송(새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요한복음 21:15~25>
내 양을 먹이라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24.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말씀 묵상>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부탁하심
15. 그들이 아침 식사를 끝마치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예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16.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수께 대답했습니다. “예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 떼를 쳐라.”
17.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째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근심하며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 떼를 먹여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옷 입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리고 너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19.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인지를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라!”
20. 베드로가 돌아보니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이 제자는 만찬에서 예수께 기대어 “주여, 주를 배반할 사람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21. 베드로가 그 제자를 보며 예수께 물었습니다.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22.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원한다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23. 이 말씀 때문에 이 제자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형제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원한다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신 것뿐이었습니다.
24. 이 일들을 증거하고 기록한 사람이 바로 이 제자입니다.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25. 이 밖에도 예수께서 행하신 다른 일들이 많이 있으나 그 모든 것을 낱낱이 다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한 책들을 다 담아 두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요약>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시자,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신다고 답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분의 양을 치고 먹이라 하십니다. 또한 늙어서는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려다닐 베드로에게 다른 제자가 어떻게 될지 상관하지 말고 그분을 따르라 하십니다.
치유와 회복과 목양의 자격에 대하여
▼ 요한복음 21:15-25
묵상내용(그루터기 선교회)
새해 첫날 시작했던 요한복음 묵상이 마쳐지는 이 아침
추운 겨울을 지나서 피어나는 연초록 산수유들이
우리 아파트 화단에 가지마다 피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겨우내 메말랐던 가지에 잎도 피기 전에
먼저 꽃을 피운 연두색 꽃잎들이 반가웠고
또 꽃을 피우려고 도톰하게 올라온 봉우리들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희망의 새 봄이 담겨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살금살금 다가온 듯
어느새 우리 곁에 와 있는 새봄이 반가운 이 아침
우리에게 따스한 봄날을 보내오시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시는 주님 앞에서
오늘 나도 아름다운 묵상의 한 꽃으로 피어나고 싶습니다.
1. 다시 갈릴리 바닷가에 서서
이 책의 저자 요한은 주님께서 베드로와 제자들을 만나서
사랑의 문답을 나누시는 장소를 주님과 제자들 사이에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인 갈릴리 바닷가로 그리고 있습니다.
시몬이 처음 주님께 부름 받았던 곳도 바로 이곳 이었는데
주님은 지금 그 추억의 장소인 이곳에 오셔서
특별히 베드로를 향한 사랑의 문답으로 운을 떼십니다.
해변에 피어있는 모닥불에 둘러앉아서
떡과 고기로 배불러진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육신의 배부름보다 더 중요한 영혼의 힐링을 위해
주님이 주도하시고 만드신 이 자리입니다.
2. 첫 사랑의 추억: 요한의 아들 시몬아 !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름을 호칭하시면서
베드로의 본래 이름인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부르시는데
그것도 연속해서 세 번이나 호칭하심으로
우리 함께 처음 만났던 그 첫사랑의 시절
초심으로 돌아가서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해보자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 부름받기 전 갈릴리의 한 촌부에 불과했던
시몬이 예수님을 만나서 [반석]베드로란 이름을 얻고
주님을 따라 나선지 어느덧 3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3 주 전 주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시던 날
자신의 굳은 맹세를 저버리고 주님을 부인했던
쓰라린 자괴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베드로는
진정 힐링이 필요한 마음의 병을 안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대제사장 안나스의 뜰에서
주님과 눈이 마주쳤을 때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황소 같은 눈망울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았는데
자괴감으로 무너져있던 그를 다시 세워주시기 위해
주님은 사랑의 문답으로
무너진 그의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그것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
어떤 이유로 마음이 닫혀버린 상대에게
"나, 자기를 변함없이 사랑하는데
자기도 날 사랑해 ! " 라고 말하면서
사랑의 확인을 요구하는 것처럼
더 이상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게 된 그에게
주님은 “내가 너를 사랑하는데 너도 날 사랑해”라고
확인받고 싶어 하는 질문으로 마음 깊이 닿아집니다.
기도하기
3. 겸손 :
네가 이 사람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사실 지금 자괴감에 빠져있는 베드로의 실패는
다른 제자들보다 자신은 더 주님을 사랑한다는
자신감/교만에서 이미 예견된 것 이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 죽음을 몇 시간 앞두시고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하셨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만큼은 주님과 함께
감옥에도 죽음에도 함께 갈 것이라고 장담했는데
동료 제자들에게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고
위화감을 조성했던 베드로의 교만은 깨어지고
다듬어질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주님은 밀 까부르듯 청구하는 사단에게
일시적이나마 베드로를 내어주신다고 하신대로
베드로는 넘어졌고 그 마음은 무너져버렸습니다.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 프로이드는
그의 정신분석학 이론에서 마음의 장애를 치유하려면
장애를 유발시킨 그 사건과 현장으로 되돌아가서
그 때의 일을 되돌려 리바이블 시켜야한다고 하는데
주님은 이미 이런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다 아시는 듯
베드로를 그 때 그 시간과 그 현장과
그가 그 때 했던 말들 가운데 세우고 계십니다.
마지막 만찬을 나눴던 다락방에서 다른 제자들보다
자신을 우월하게 놓았던 그 말들을 상기시키시는 듯
이 사람들 보다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며
또 대제사장 안나스의 뜰에 피어있던 모닥불처럼
갈릴리 해변에 모닥불 가에서 그를 마주하고 계시고
또 베드로가 세 번 주님을 부인했던 것처럼
다시 세 번 나를 사랑하느냐는 문답으로 다가가십니다.
어찌 보면 지난날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은
마음의 고통을 더 증폭시킬 수 있겠지만
마음속에 비수처럼 꽂혀버린 상처를 치유하기위해서
부득이하게 통과해야 하는 이런 치유의 과정은
베드로에게도 주님에게도 모두
서로에게 필요한 절차였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랑의 문답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아가파스 [절대적인 사랑]으로 물었고 베드로는
필레이스 [우정의 사랑]으로 답변했기 때문에
주님은 다시 필레이스[우정의 사랑]으로 물으셨고
베드로는 다시 필레이스로 답변했는데
주님께서 세 번째 다시 필레이스로 물으실 때는
자신에겐 이 사랑조차 말할 자격이 없음을 깨닫고
근심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가난한 마음으로 필레이스 사랑을 답변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데 아가파스가 아니어도
필레이스의 사랑만으로도,
아니 필레이스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잘 것 없는 가난한 사랑이더라도
주님은 베드로의 사랑을 받아주시고
상처 입은 그의 마음이 치유되게 하시며
그가 서있어야 할 본래의 자리와
새로운 사명에 세워주셨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더 이상 동료 제자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우쭐하고 싶은
철부지 제자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실패와 실수를 넘어서서
성숙해졌고 주님과 동료들 앞에
겸손하게 낮아진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자신이 받은 치유처럼 상처 입은 자들을
치유하며 초기교회를 앞장서 인도해가는
직분을 회복하였습니다.
묵상적용
4. 치유와 사명:
네가 날 사랑한다면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이 말씀은 베드로가 천 번 만 번 들어도 좋은
치유와 사명을 위해 주시는 힐링의 절정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베드로를 치유 회복하시며
본래의 자리로 복직해 주시는 이 말씀이 없었다면
초기교회 베드로의 사도적 위상과 지도권은
크게 타격을 입었을 것이고, 크게 흔들렸을 것입니다.
요한이 이미 베드로가 주님 품으로 가고 없던
AD 90년대에 이런 베드로의 이야기를 굳이
끄집어내는 것에는 한 때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에 대한 초기교회의 의심을 불식 시키며
더 나가서 베드로가 중심이 되었던
예루살렘 공동체와 요한이 중심이 되어있는
에베소 공동체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유추하게 됩니다.
더불어 이 치유와 회복의 말씀은
내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자 인가
나 스스로에게 자문해볼 수 있는 질문인데
내 지난날의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지금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필레이스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잘 것 없는 사랑이라고 하여도
주님께 향한 변변치 못한 이 가난한 사랑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근심으로 답변하게 되는 사람이라면
주님은 이런 나에게도 내 양이 아닌
주님의 양을 맡기겠다고 하시는
축복의 말씀으로 받아 드리게 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도 이런 은혜를 주셔서
내가 주님의 양들을 먹이고 품고 돌볼 수 있는
목양의 가슴을 갖게 하시고
주님의 양들을 맡겨주신다면
이 세상에서 이 보다 더 큰 축복이 없다는 것을
이 아침 겸비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간구합니다.
주님 !
내게도 주님의 양들을 먹이고 돌볼 수 있는
목양[牧羊]의 은총을 내려 주셔서
주님을 사랑하므로
주님의 양들을 사랑하고 품을 수 있는
행복한 목양과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을 먹이라고 부탁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조반을 먹은 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십니다.
베드로의 맹세와 배신에 대한 비난이나 책망도 없이 오직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말씀뿐입니다.
그의 사랑을 확인한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고 사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실패자, 도망자로 두지 않으시고 찾아오셔서 단 한 가지 사실만 확인하십니다.
여전히 예수님을 사랑하는가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당신을 사랑하는지 세 번 확인하신 후 내 양을 먹이라는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자기들의 할 일을 몰라 방황하던 제자들에게 사명을 확인해주신 것입니다.
제자는 주님의 길을 따르는 자들인데 주님의 길은 양을 먹이고 돌보는 목자의 길입니다.
그 길을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이 주님을 사랑하는지 점검해야 됩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주님께 받은 부탁을 이루는 길의 끝은 죽음입니다.
베드로의 앞날을 예수님이 예고 하셨을 때 베드로가 요한을 가리키며 이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 대해 상관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모든 성도는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 갖기보다 각자 어떻게 예수님을 따를지에 집중해야 됩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이며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갈까요?
성경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명확하게 대답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허락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며 힘을 다해 주님을 온전히 섬기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시 128:1~2)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마 26:31~32)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막 9:23~2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눅 5:4~6)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2~23)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6~17)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고전 15:12~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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