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1~14 > 부활의 주님이 베푸신 사랑의 식탁
오늘의 찬송(새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
<요한복음 21:1~14>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시다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말씀 묵상>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1. 그 후 예수께서는 디베랴 바다에서 제자들에게 다시 자신을 나타내셨는데 그 나타내심은 이러합니다.
2. 시몬 베드로, 디두모라고 하는 도마, 갈릴리 가나 사람인 나다나엘, 세베대의 두 아들들, 그리고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습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같이 가겠소” 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나가서 배를 탔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그들은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4. 날이 밝아 올 무렵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 계셨으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신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5.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얘들아, 물고기를 좀 잡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한 마리도 잡지 못했소”라고 대답했습니다.
6.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 보라. 그러면 물고기가 잡힐 것이다.” 제자들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자 물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배 안으로 들어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7.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베드로에게 말했습니다. “주이시다!” 시몬 베드로는 “주이시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벗어 두었던 겉옷을 몸에 걸치고 물로 뛰어들었습니다.
8.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배를 탄 채 물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끌면서 배를 저어 육지로 나왔습니다. 배가 바닷가에서 약 200규빗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9. 제자들이 육지에 도착해서 보니 숯불을 피워 놓았는데 숯불 위에는 생선이 놓여 있었고 빵도 있었습니다.
1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방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11.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육지로 끌어내렸습니다. 그물 안에는 큰 물고기가 153마리나 들어 있었습니다. 물고기가 이렇게 많았는데도 그물은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1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아침을 먹으라.” 다들 그분이 주이신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 중 감히 그분께 “누구십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3. 예수께서 오셔서 빵을 가져다가 제자들에게 나눠 주셨고 이와 같이 생선도 주셨습니다.
14.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이것이 세 번째였습니다.
<오늘의 말씀 요약>
베드로와 여섯 명의 제자는 물고기를 잡으러 디베랴 호수에 갔으나 날이 새도록 아무것도 잡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시자,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힙니다. 예수님은 숯불 위에 놓았던 생선과 떡을 제자들에게 주십니다.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요한복음 21:1-14(그루터기 선교회)
어느 덧 요한복음 묵상도 마지막 장까지 왔다.
코로나 19로 온 세상의 일상이 정지되거나 비틀어지고 있는 요즘
변함없는 주님의 말씀과 사랑에 내 영혼을 기대고 위로를 삼으며
오늘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생기와 내 삶의 동력이 되게 하고 싶다.
1. 주님과 함께했던 영혼의 고향. - 아~ 갈릴리[21:1a]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하여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고
헤롯의 살해 위협을 피해 갓난아기 시절 잠시 애굽으로 갔던 것 외에
생의 대부분의 날들과 시간을 갈릴리에서 보내셨고
따라서 갈릴리 곳곳을 손금 보듯 환하게 알고 계셨으며
제자들을 비롯하여 지인의 대부분이 갈릴리 사람들 이셨던 것 같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생의 대부분을 보낸 장소로써
이 갈릴리에 대한 향수와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바램은 간절하여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하늘 보좌로 가시기 전
이 세상에 잠시 더 체류하는 40일의 날 들 중 대부분을
이곳 갈릴리 지역에서 보내신 것으로 추정된다.
바울의 기록에 의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가장 많았던 때가 오백여명 이었다고 한 것을 보면 [고전15:6]
아마 그 대부분은 갈릴리 사람들 이었고
이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게 될 때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 근교 베다니 감람산까지 따라와
하늘로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배웅한 것으로 추정하게 되는데
그 때 천사가 말하기를 "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가운데 하늘로 올리우신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대로 다시 오시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행1:11]
아마 예수님은 지금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도
이 땅에 계셨을 때 그의 마음과 발걸음이 곳곳에 머무르셨던
갈릴리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많이 가지고 계실 것인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직후에도 그러하여서
그 날 아침 빈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당부하시기를
제자들에게 가서 말하기를 내가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니
거기 갈릴리에서 우리가 만나자고까지 하신 것을 본다.[마28:7. 10]
따라서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 휘날레를 장식하는 21장의 이야기가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진한 향수가 배어 있는
이 갈릴리를 배경에 두고 전개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리라.
그러나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이 주후 90년경 지난날을 추억하면서
여기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님과 자신들 7명이 다시 만났던 것은
단지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로써 뿐 아니라
부활하신 후 주님께서 자신을 세 번째로 나타내셨던
여기 갈릴리에서부터 잠시 흐트러졌던 베드로와 자신들이
여기 주님을 처음 만났던 갈릴리에서 부터
다시 회복되고 다시 사명에 붙잡히며 오직 주의 사랑에 메어
당시 로마제국으로 상징된 세상을 향하여 나가게 되는
시발점이 된다고 하는 점에서 여기 갈릴리 바닷가에서
다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것은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2. 자기를 나타내시는 예수님.[21:1. 14]
오늘의 말씀을 몇 번이고 읽어보면서 가장 마음에 닿아지는 구절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다고
세 번이나 강조하는 "나타내신 것이라"는 구절의 말씀이다.[21:1. 14]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기 전에는 자신들과 같은 육체를 가지셨기에
언제 어디서고 찾아가서라도 만날 수 있었지만
이제 부활하신 주님의 영체[부활체]는 이전에 제자들이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도 만날 수 있었던 그 주님의 몸이 아니시어서
이제는 주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주지 않으시면 만날 수 없는 관계인데
AD 30년 유월절이 지나고 보리 추수의 시기[맥추절]이 가까 오는 무렵
예수님이 자신들을 찾아오셔서 자신을 나타내주시고 만나주시는
이 갈릴리 바닷가의 만남은 주님의 승천을 앞두고 뜻깊은 만남이 된다.
이처럼 자신을 나타내주시고 만나주심이 아니면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그 상처 난 가슴을 그대로 안고
남은 인생을 실패자로 살 뻔 하였고 이것은 다른 제자들에게도 동일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에 대하여 깊은 죄책감과 상처를 가지고 있는 제자들을
그대로 두시고 하늘로 오르시기에는 마음이 너무 여리신 분이시다.
처음 그들을 갈릴리 바닷가에서 만나셨을 때 "너희가 나를 따라오면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는데 [마4:19]
이 약속이 무효가 되고 제자들을 실패자들로 남겨두고 떠나시기에는
그의 큰 사랑의 가슴과 전능성이 이상태 그대로를 용납하지 않으신다.
3.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21:3]
그래서 주님은 처음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의 장면을
다시 재현이나 하시듯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한 제자들의 빈 배와
그리고 어쩌면 빈 배보다 더 허허로운 가슴을 가진 그들을 찾아오셨다.
적용하기
4.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21:6]
주님께서 자신을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내신 방법은 3년 전
제자들을 처음 부르셨을 때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방법을 쓰셨는데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물어보시고
"그 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셨고 [21:6]
또 실제로 그물을 끌 수 없을 만큼 많이 잡게 하셨는데[[눅5:6. 요21:6]
3년 전의 일을 떠올리게 하는 주님의 이러한 말씀과 포퍼먼스는
요한에게 주님을 알아보게 만드는 인싸이트[영적조명]이 되었고
그래서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5. 요한과 베드로 두 사람의 차이[21:7]
부활하신 날 새벽 여인들이 알려준 빈 무덤을 향해 달려갈 때도
요한이 먼저 달려갔지만 덤 입구에서
잠시 생각하며 주춤하고 있었을 때[선 사고 후 행동 ]
베드로는 뒤늦게 도착하여 생각하고 말고 할 것 없이
서슴없이 무덤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선 행동 후 사고]
여기 갈릴리 바다 고기잡이배에서도 그러하였다.
요한이 던진 "주님이시라"는 말에 베드로의 가슴은 벌렁거렸고
순간의 지체도 없이 주님께 빨리 가려고 물속으로 뛰어든 것을 보면
그가 비록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어도
여전히 그는 주님을 사랑하는 제자이며
또 이런 베드로를 모를 리 없는 주님은
그의 상처 난 가슴을 치유 회복하고 사명에 세우시기 위해
이렇게 찾아오신 것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조용하지만 발동이 쉽게 걸리지 않은 요한이라는 제자,
그리고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만 사려 깊지 못한 베드로
어찌 보면 도무지 하나 될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제자들의 성격 차이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초기 교회를 위해
이들의 남은 생애와 사역을 아름답게 사용하셨다.
요한이 이 복음서를 쓸 당시
그들이 처음 주님께 부름 받았을 때의 모습처럼
베드로는 초기교회 수장이 되어 그물을 던지는 사람처럼 복음을 전하다
자청하여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교로 주님 앞에 갔고
요한은 뚫어진 그물을 깁는 사람처럼 모든 사도들이 순교하고 떠난
초기 교회에 늦게까지 남아서 [로마제국의 핍박으로 힘든 그 시대]
사랑으로 매만지고 치유 회복시키는 사람으로 이 복음서를 쓰고 있다.
주님은 오늘도 그가 머리가 되시는 우리들의 교회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을 그들이 천래적으로 타고나는 성격과
또 그가 주신 은사를 따라 사용하시는 분이시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을 수 없는 다양성 가운데서도 오직 주님 때문에
연합과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것은 그의 영[성령]의 하나 되게 하시는 역사이다.
6. 153의 축복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라][21:10]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좇아서 그물을 던져 잡은 물고기들은
모두가 작은 물고기도 아니고 큰 물고기만 153마리라고 했으니
밤새도록 빈 그물질로 허탕을 쳤던 것을 생각하면
그들은 주님의 신적 능력 앞에서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그러나 물고기를 가득 채운 그물을 통째로 끌고 온 것 보다 더 큰 감동은
주님께서 자신을 이렇게 나타내심으로
제자들 자신들이 처음 부름 받았을 때의 장면처럼
이 모든 물고기보다 더 크고 소중하신 주님을 다시 깨닫고 만난 것이다.
그들은 다시 생계를 위한 고기잡이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로써 주님의 부르심 앞에 다시 선 것인데
이젠 물고기나 생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 오직 예수!
그리고 그가 자신들에게 기대하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만이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소명이며 부름인 것을 확인한 것이고
이것은 요한복음을 마감하는 주님과 베드로의 사랑의 문답에서
다시 한 번 제자들 모두와 오늘 이 시대에 그의 제자가 된
나에게까지도 나의 신앙과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재정립시키는 말씀이다.
7. 주님이 마련하신 해변의 식탁- 와서 조반을 먹으라[21:8.12]
제자들이 밤새도록 갈릴리 바다에서 빈 그물질로 심신이 피로했고
바다에 어둠이 물러가고 여명이 찾아와 새벽녘이 되었을 때는
그 피곤함은 더 하고 배도 심히 고팠을 것인데
이러한 그들의 생리와 사정을 다 파악이라도 하시는 듯
주님께서 밤바다에서 돌아온 그들을 위해 해변의 식탁을 마련하셨다.
거기 그들의 추운 몸과 젖은 옷을 말릴 수 있는 모닥불을 피어놓으셨고
또 어디서 구해 오셨는지 떡을 굽으셨으며
방금 잡은 물고기도 불에 익히도록 가져오라고 하시며
이제 막 갈릴리 바다 수평선에 떠오른 아침 햇살 아래서
주님과 제자들만의 아름다운 식탁의 향연을 연출하신다.
와서 조반을 먹어라!
이 얼마나 다정하신 주님의 부르심인가?
밤새도록 어두운 밤바다에서 몸도 마음도 지치고 배가 고파진
제자들의 상태를 다 아시고
친히 해변의 모닥불과 떡과 방금 잡은 생선도 구어 주시는
이 다정하신 주님의 마음과 손길은
오늘도 이 거친 세파에서 영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심신이 지친
나 같은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베풀어주시는 사랑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렇게 심신이 지친 제자들의 몸을 덥혀주시고
허기진 배를 채워주시며 훈훈한 분위기를 만드신 것은
그 다음을 위한 포석으로 이해하게 되는데
이것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베드로와 나누는 사랑의 문답에서 보게 되는 것처럼
먼저 심신이 피곤하고 지쳤으며 배가 고픈 상태에서는
더 깊은 마음의 이야기[사랑의 문답]으로 나갈 수 없는
제자들 곧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아시고 이해하심에서 나오는
주님의 사려 깊으신 사랑의 배려에서 나온 것임을 넉넉히 헤아리게 된다.
주님!
2020년 3월 17일 아침 오늘의 말씀을 펴고 묵상하면서
갈릴리 바닷가에 제자들을 찾아가셨던
주님의 그 깊은 사랑의 마음이 내 안에도 읽혀집니다.
치유와 회복 그리고 새로운 사명에 세우시기 위해
찾아오신 주님의 그 발걸음과 자비하신 사랑을 기억하며
나도 오늘 여기 힘든 세상에서 주님을 의지하여 굳게 서게 하소서. -아멘-
디베랴 바닷가로 고기 잡으러 간 제자들을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가신 이야기입니다.
찾아오시는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음에도 제자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갈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생활, 익숙한 생업의 현장으로 돌아갔는데 물고기 잡으러 가자는 베드로의 제안에 여섯 명의 제자들이 따라갔습니다.
그곳에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예수님은 다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우리를 부르시고, 먹을 것을 준비하시며 동일하게 사랑으로 세워 가십니다.
153마리 기적
생업으로 돌아간 제자들은 밤새 그물을 내렸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아신 에수님은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고 그 말씀에 따른 제자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결과를 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목적은 제자들에게 소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때 잡은 고기에 집중하여 153마리 고기를 세기에 바쁩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면 그때는 고기를 세는 시간이 아니라 예수님을 봐야 하는 시간입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갑자기 고기가 많이 잡히자 요한은 주님이라고 소리쳤고 언제나 행동이 앞섰던 베드로는 바다에 뛰어들었는데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위해 따뜻한 자리와 음식을 준비해 놓으시고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부르셨습니다.
실수가 많은 베드로처럼 우리의 연약함도 쉽게 변화되지 않지만 우리를 사랑하고 기다리시며 회복시키시는 예수님도 언제나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를 기다려주시고 변화시키시는 주님께 있습니다.
신앙은 예수님과의 관계인데 대부분 그 관계는 일방적입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이 관계를 만들고 유지합니다.
신앙에 실패하고 주님을 배신해 도망간 베드로 같은 우리에게도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부르시고 말씀하시며 회복시키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마 4:18~20)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마 28:7~1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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