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17~35>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의 찬송(새 267장 주의 확실한 약속의 말씀 듣고)
<요한복음 11:17~3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말씀 묵상>
17. 예수께서 그곳에 도착하셔서 보니, 나사로가 무덤 속에 있은 지 이미 4일이나 됐습니다.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약 15스타디온 못 미치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19. 많은 유대 사람들이 오빠를 잃은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려고 와 있었습니다.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달려 나가 예수를 맞았지만 마리아는 집에 남아 있었습니다.
21. 마르다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지금이라도 주께서 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줄 압니다.”
23.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빠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24. 마르다가 대답했습니다. “그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제가 압니다.”
25.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26.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다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네, 주여! 주는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가 믿습니다.”
28. 마르다는 이 말을 하고 나서 돌아가 자기 동생 마리아를 불러 가만히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여기 와 계시는데 너를 부르셔.”
29.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로 갔습니다.
30. 예수께서는 아직 동네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마르다가 마중 나갔던 그곳에 계셨습니다.
31. 마리아와 함께 집 안에 있으면서 그녀를 위로하던 유대 사람들은 마리아가 벌떡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통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 알고 따라나섰습니다.
32. 마리아는 예수께서 계신 곳에 이르러 예수를 보자 그 발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저희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33. 예수께서는 마리아가 흐느껴 우는 것과 따라온 유대 사람들도 함께 우는 것을 보시고 마음이 비통해 괴로워하셨습니다.
34.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를 어디에 뒀느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주여, 와서 보십시오.”
35.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오늘의 말씀 요약>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때에 예수님이 베다니에 오십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으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인 자신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고 하시며,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십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한복음 11:17-37(그루터기 선교회)
1. 이미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라 [11:17]
유대인들에게는 사람이 죽은 후 사흘 째 까지는
죽은 자의 영혼이 자신의 육체를 떠나지 못하고
맴돌다가 나흘 째 떠난다는 미신적인 사고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삼일 째를 지나
나흘째에 접어들면 죽은 자의 시신이 부패해서
썩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초상집에 도착하신 것이 이미 사흘을 지나
나사로가 이미 무덤에 들어간 지 나흘째가 되었으니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기다릴 것도 없이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상태를 강조하는 것 같고
한 편으로는 나사로를 살려내신 것이
얼마나 극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일인가를 강조하는
나흘째로써 여기에 기록된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2. 마르다에게 보여 지는 믿음의 명멸[明滅][11:21-27]
예수님이 베다니 마을의 동구 밖에 도착하였다는 전갈이
왔을 때 마르다는 나가 맞이하고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는 말씀에서 두 자매의 성격상
차이가 또 다시 한 번 자연스럽게 보여 진다.
다른 복음서에서도 예수님이 이 가정을 방문했을 때
마르다는 부엌에 들어가 부지런히 준비하는 활동성을
보이는가 하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서
말씀을 들었다고 했는데
오늘의 말씀에서도 마르다는 나아가 맞이하는 모습을
그리고 마리아는 앉아서 기다리는 정적인 모습이다
예수님이 베다니 마을 입구에 서 계신 곳은
동구 밖 무덤이 가까운 곳으로 추정이 되는데 [11:34]
초상집으로 들어가시지 않고 동구 밖에 계신 것은
후에 마리아를 따라 동구 밖으로 나온 사람들 모두가
함께 무덤으로 가서 나사로를 살려 내시는 표적을
보게 하시려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곳에서 마르다는 주님과 주고받는 대화 가운데
그의 오라비 나사로를 다시 살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가 또 이 희망이 사그라지는
믿음의 명멸 현상을 보이고 있다.
마르다: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했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 수 : 네 오라비가 살아나리라
마르다: 마지막 부활 때에는 살아날 줄 아나이다.
[마르다는 이미 예수님께 전갈을 보냈던 사람을 통해서
이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는
뜻밖의 말을 전해 들었던 것일까 (?) [11:4]
아니면 예수님의 전지전능하신 신적능력을 믿었다가
또 현실적으로는 오라버니가 지금 무덤에 들어있기에
다시 이 믿음이 꺼져버리는 현상을 반복한 것일까(?)
베드로 역시 풍랑의 바다에 서신 예수를 바라볼 때는
바다를 딛고 섰지만 풍랑을 보면서 무서워 빠져 들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마14:31)
3. 가장 빛난 예수님의 자기 선언과
--이에 반응하는 마르다의 신앙고백[11:25-27]
예수님이 마르다와 주고받는 대화 가운데
다시 한 번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시는
에고 에이미 [나는 *** 이다]가 나타나는데
이는 요한복음에서 소개되는 다섯 번째 자기 선언이자
예수님의 자기 계시의 최고 절정적인 말씀으로써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11:25]는 선언이다.
이어서 하신 말씀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영구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영생 선언으로써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와 믿음으로 연합된 자는
절대로 영원한 죽음을 맛보지 않으며
그의 육신과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분리됨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 드리게 된다.[요5:24]
따라서 성도에게는 육체의 죽음마저도 진짜 생명을
소멸할 수 없는데 육신의 죽음은 영생의 기쁨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통로요, 관문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예수님의 최절정적 자기계시에 반응하여
마리아는 정말 정확한 신앙고백을 하였는데
이는 이 복음서의 자자 요한이 이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과 일치되는 신앙고백이 되었다. [요20:31]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11:27]
나는 오늘의 본문을 중국어로 읽으면서
죄와 죽음의 문제를 피할 수 없는
선교지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 기록된 말씀을 꼭 보여주고라도 싶은
강한 충동이 안에서 부터 솟아오른다.
이 세상에 죄와 죽음과 비참에 빠진 인간을
구원해주는 이같이 귀한 말씀이 또 어디에 있을 것인가(?)
적용하기
3.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Jesus wept)[11:35]
예수님과 대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마르다는
동생 마리아를 불러 예수님께 가보도록 말하는데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달려 나가는 마리아의
모습이 너무 돌발적인 모습 이어서 그녀가 무덤에
곡하러 가는 것인 줄 알고 초상집에 조문을 왔던
많은 유대인들이 마리아를 따라서 나오게 되는바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바로 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나사로를 살려내는 표적 중의 표적을
나타내시게 되는 바 바로 이들을 통하여
이 놀라운 이야기가 사방팔방에 퍼져나가게 된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에서 가장 가슴 저미게 닿아지는
말씀의 한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베다니 마을 동구 밖으로 나온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며
불쌍히 여기시고 함께 눈물을 흘렸더라는 말씀이다
어찌 보면 성경 전체에서 가장 짧은 구절이 되는
이 구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
"Jesus wept " (耶魚禾 哭了) -요11:35-
영어 성경에는 단 두 단어로 되어있는 이 구절을
우리말 성경에서는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로 표시했는데
사랑하는 자의 죽음 앞에서
그리고 그 죽음을 애도하는 사랑하는 가족과
또 더불어 애곡하는 사람들과 같은 슬픔으로
아무 말 없이 눈물로 대신 말하는
예수님의 깊은 마음을 읽게 된다.
성경이 보여주는 예수님의 여러 인성적인 특징은
목마름[요4:7, 19:28] 피곤함[4:6] 사랑함[20:2]
굶주림[마4:2] 기쁨[눅10:21] 탄식[막3:5]
노여움[막3:5] 등등의 많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는 볼 수 없도록
영원히 갈라놓는 인간 슬픔의 극치인 죽음 앞에서
통분히 여기시며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눈물로 대신 하시는 주님의 깊은 마음을 본다.
여기서 통분히 여기심은
인간에게 이러한 고통과 슬픔의 죽음을 가져오게 한
사단 마귀와 죄에 대한 거룩한 격분으로 이해되며
여기서 불쌍히 여기시는 눈물은
죄로 말미암아 인간이 당하는 모든 비참과 슬픔에
마음 깊이 동참하시고 동정하시며
대신하시고자 하시는 대제사장적 눈물로 닿아진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히4:7A]
"그는 육체에 계실 때 .........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으로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주님 !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비통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슬픈 눈물로 대신하신
주님의 깊은 마음 알게 하시고
눈물 젖은 주님의 눈동자에
내 마음이 닿아지게 하시사
나도 주님의 그 눈빛으로
세상의 슬픔들을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15 스타디온, 약 3km)쯤 되매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다시 살아날 것이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이 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예수께서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예수님을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마리아가 예수께서 계신 곳으로 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비통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나사로가 죽은 지 4일이나 지난 뒤 예수님이 오셔서 두 자매들과 나누신 대화이다.
마르다와 대화
예수님은 베다니에 오셔서 나사로의 무덤에 먼저 가셨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르다가 먼저 일어나 예수님을 맞이하러 나갔는데 그녀의 반응은 예수님이 늦게 오신 것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예수님이 뭔가를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그때 예수님은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선언하신다.
우리의 믿음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생명과 부활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현실 속에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믿어야 한다.
마리아와 대화
마르다가 돌아와서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부르신다고 하자 마리아는 급히 일어나 맞으러 나간다.
마리아 역시 마르다처럼 예수님이 늦게 오신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하면서 울었다.
예수님은 안타깝게 여기시고 함께 눈물을 흘려주셨다.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겠다고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마르다와 마리아의 슬퍼하고 원망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주신다.
내가 살릴텐데 왜 슬퍼하느냐고 꾸짖지도 않으시고 오히려 함께 눈물을 흘리시고 계신다.
우리가 고통당할 때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고 짐을 함께 져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는 자와 함께 우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웃의 슬픔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
나사로가 죽은 후에 베다니에 오신 예수님은 어떤 고난 속에도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모든 역경 중에 함께 하시며 아픔을 공감하시고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도 그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며 그 사랑을 베푸는 성도로 자라가길 소망합니다.
인생의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 가정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긍휼하심으로 늘 평강으로 인도해 주시고,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가정을 이루게 하시며, 두 아들의 장래가 주님의 믿음 안에서 소망과 꿈을 키워가도록 하나님의 넘치는 지혜와 도우심으로 이끌어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과 살아계심의 역사가 삶의 현장에서 온전히 드러나게 하소서.
특별히 큰 아들을 향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직장에서 자신의 꿈과 비전을 마음껏 펼치며 겸손히 섬겨가며 실력을 키워가도록 늘 함께해 주시고, 작은 아들의 직장에서 능력과 인품을 인정 받을 수 있도록 건강과 지혜로 함께 하시고, 두 아들의 장래의 배우자를 믿음 안에서 예비해주시고, 우리집 장막을 더욱 넓혀주는 축복이 임하여 주시며, 우리 가정이 구원과 축복과 은혜와 회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기도가 더욱 깊어지고 하나님의 비전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정을 통해 날마다 이루어가게 하시며, 자신의 소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가지 않게 하소서.
창립51주년을 맞은 우리교회가 말씀과 기도로 날마다 거듭나게 하셔서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가게 하시며, 건축위원회 조직과 운영이 하나님의 지혜로 믿음과 마음을 모으게 하시며, 건축시공과 함께 안전하게 공사가 진행되도록 늘 함께 지켜주시며, 아프고 힘들어 하는 모든 성도들이 건강을 회복하고 주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평안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크라이나, 중동의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능히 이겨내도록 이 나라를 위로하시며 속히 회복하도록 구원과 도움의 손길이 임하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 대한민국이 참으로 자신의 욕심과 이념으로 갈라진 마음을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로 통합하며, 공의와 진실로 다스려지는 이 나라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주장하시며, 국가의 여러 어려움을 하나님의 지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며 능히 이겨내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이 나라를 다스려 주시고, 다음세대가 꿈과 비전을 이루어가며 교육하도록 지혜로 함께 하시고, 모든 국민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하소서.
장기적인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하고자 하오니 모든 거래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도록 여러가지 여건을 준비하여 주셔서 가정이 온전히 아름답게 마무리하게 하시고, 다시 시작하는 배움의 교육과정을 온전히 준비하고 마무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날마다 겸손한 자세로 배우며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며, 한 주간도 우리 가정이 믿음과 사랑으로 회복하며 서로 소통하며 즐겁고 행복한 날들을 보내게 하소서. 아멘.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 19:25-26)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마 14:31~33)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눅 8:55~56)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요 19:28)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7-58)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요일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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