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2024.3.24.)
좋은 말씀/오스왈드챔버스
주의 목적을 위하여 쇠하여야 하리라(2017년 3월 24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만일 당신이 어떤 영혼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된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질서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사역자로서 당신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신랑(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는 입장에서 영혼을 대한다면 당신의 영향력은 바른 방향으로 역사할 것입니다. 그들의 역경을 막아주기 위하여 손을 내미는 대신에, 그들이 열 배나 더 강하여져서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도, 심지어 지옥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영혼을 주 예수님께로부터 빼앗을 수 없도록 기도하십시오.
계속적으로 섣부른 간섭으로 “이러 저러한 일들이 있어서는 안되지.”라고 하며 그들의 도움이 되려고 하면 이는 사실 하나님의 역사를 간섭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막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섭하는 가운데 우리는 신랑 예수님의 친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알량한 자비를 집어넣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혼은 어느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도둑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빼앗아갔지요. 나는 그때 저 사람 때문에 주님을 향한 비전을 잃었어요.”
그릇된 길에서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옳은 길에서 기뻐하고 있는지 살피십시오.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 말은 기쁨 가운데 말한 것이지 슬픔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마침내 그들이 신랑(예수님)을 봅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기쁨이었습니다. 이것이 사역자의 정신입니다. 자신은 전혀 드러나지 않게 하고 다시는 기억조차 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신랑의 음성이 들리기 전에 다른 사람의 삶에 당신이 소중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버리십시오. 다른 사람이 당혹스러운 상황이며 힘든 상황이라도, 심지어 건강을 잃더라도 당신이 신랑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의 음성이 들릴 때 신성한 희열가운데 기뻐하십시오. 당신은 종종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의 삶을 파선케 하신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참조, 마 10:34).
[출처] 3월 24일 주의 목적을 위하여 쇠하여야 하리라(작성자 스데반)
* 우리가 단체생활에서 흔히 주도적인 사람이 되라고 말하며 자신의 꿈과 비전을 이루며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너무 자신의 욕구만 생각하고 공동체의 이념과 이익을 망각한 채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우를 보게 된다.
드디어 동료와의 관계 보다는 너무도 화합하지 못하고 생뚱맞게 처신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 경우에 피로도 빨리 오고 지치게 되어 화합과 사랑과 함께 서로를 위하는 멋진 하모니 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을 깊이 되돌아보아야만 한다.
무엇이 먼저이고 인생의 깊이와 의미를 다시 되새겨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과 사명을 냉정하게 바라보도록 지혜와 눈을 갖도록 잠시 멈추는 것이 훨씬 중요함을 깨닫게 한다.
그 안에서 있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마련이다.
어쩌면 주도적인 삶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서 주변인으로 살아가면서 철저하고 냉정하게 애정을 갖고 바라보며 잠시 쉼을 갖으며 살아야 되지 않을까 한다.
그리하면 분명 진실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자세를 보게 하리라 생각한다.
이는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향한 자신의 철저한 겸손의 낮아짐의 자세를 드러내놓고 있듯이 말이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오히려 주님만을 높이며 기쁘게 소개하고 있다.
참으로 인생의 깊은 의미를 더욱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다. 아멘.
<Forever - Stratovar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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