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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사도행전,로마서)

2023년8월25일(금) (행 26:24~32) 사랑과 열정의 사슬에 결박된 전도자

by 방일 2023.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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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6:24~32> 사랑과 열정의 사슬에 결박된 전도자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전도하다

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24.  At this point Festus interrupted Paul's defense. "You are out of your mind, Paul!" he shouted. "Your great learning is driving you insane."
25.  "I am not insane, most excellent Festus," Paul replied. "What I am saying is true and reasonable.
26.  The king is familiar with these things, and I can speak freely to him. I am convinced that none of this has escaped his notice, because it was not done in a corner.
27.  King Agrippa, do you believe the prophets? I know you do."
28.  Then Agrippa said to Paul, "Do you think that in such a short time you can persuade me to be a Christian?"
29.  Paul replied, "Short time or long -- I pray God that not only you but all who are listening to me today may become what I am, except for these chains."
30.  The king rose, and with him the governor and Bernice and those sitting with them.
31.  They left the room, and while talking with one another, they said, "This man is not doing anything that deserves death or imprisonment."
32.  Agrippa said to Festus, "This man could have been set free if he had not appealed to Caesar."

 

 

<말씀 묵상>

 

24.  바울이 이같이 말하자 베스도가 바울의 변호를 가로막으며 소리쳤습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네 많은 학식이 너를 미치게 했구나.”
25.  바울이 대답했습니다. “베스도 각하, 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사실이며 제정신으로 하는 말입니다.
26.  왕께서는 이 사실을 알고 계시므로 제가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것 하나라도 왕께서 모르고 넘어가셨을 리 없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예언자들을 믿으십니까? 왕께서 믿으시는 줄 제가 압니다.”
28.  그러자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이 짧은 시간에 나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29.  바울이 대답했습니다. “짧은 시간이든 긴 시간이든 왕뿐 아니라 오늘 제 말을 듣고 있는 모든 분들이 이 쇠사슬을 제외하고는 저처럼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30.  그러자 아그립바 왕이 일어났고 베스도 총독과 버니게 그리고 그들과 함께 앉아 있던 사람들도 다 일어났습니다.
31.  그들은 밖으로 나가면서 “이 사람은 사형이나 징역을 받을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라고 서로 말했습니다.
32.  아그립바는 베스도에게 “이 사람이 황제께 상소하지만 않았더라도 석방될 수 있었을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자신더러 미쳤다 하는 베스도 총독에게 자신은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한다고 합니다. 아그립바왕도 믿기를 거부하자 바울은 결박된 것 외에는 모두가 자신처럼 되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아그립바왕은 바울의 무죄를 인정하고 그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않았다면 석방될 뻔했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성연 경제학 박사)

 

우리는 자존심이라는 말과 자존감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또 쓰기도 한다. 그러면 두 개념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평소에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으니 그게 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두 말은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매우 대립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누구로부터’ 사랑과 존중을 받느냐와 관련된다.

 

자존심(Pride)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품위를 높이는 마음”이라 되어 있다. 그러나 자존감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자존감이란 자아존중감(self-esteem)의 약어이기 때문이다. 자아존중감이라는 용어는 하버드 대학 교수이자 철학자이며 하버드 대학에 심리학과를 만든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가 1890년에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먼저 자존심에 대해 검토해보자. 자존심(pride)은 나의 내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주변과의 비교를 전제로 한다. 때문에 자존심은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나면 낮아지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만나면 우쭐해진다. 예를 들어 수학시험을 치렀는데 95점을 맞았다.

 

객관적으로 보면 매우 높은 점수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기준에 따라 평가하지 않는다. 자기와 라이벌인 학생이 98점을 맞았다고 하면 자신이 비참해지고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 학생이 90점을 맞았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우쭐한 마음이 든다. 그러니까 자존심은 객관적인 현상이 아니라 주변과의 비교를 통한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한다.

 

자존감(Self-esteem)

 

자존감, 즉 자아존중감은 자신이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자아존중감이 있는 사람은 자아정체성(self-identity)이 제대로 확립된 사람이고, 자존심만 강한 사람은 자아정체성이 아직 혼미(identity diffusion)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다.

 

자아존중감이 높은 사람은 스스로를 존중하고, 다른 사람의 평판이 아닌 나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한다. 내가 주체이고 남들은 객체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깎아내리거나 험담을 할 때도 확고한 자아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존심이 상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확고한 자기 주관을 견지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하여 신경을 많이 쓰며, 다른 사람들의 평가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를 쓴다. 다시 말하면 자존심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거기에 맞도록 행동을 한다. 따라서 삶이 매우 피곤하다.

 

시선의 방향에 따라

 

전문가들은 자존심과 자존감의 결정적 차이는 ‘시선의 방향’에 있다고 말한다. 자존심의 시선은 ‘나의 밖’을 향하고 있고, 자존감의 시선은 ‘내 안’을 향하고 있다. 즉 자존심은 ‘남들이 나를 보는’ 것이라면, 자존감은 ‘나 스스로 나를 보는’ 것이다. 따라서 자존심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하는가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자존감은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자존감이 높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중요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기에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건 말건 내가 나를 잘 알고 있으므로 주체성이 흔들리지 않는다. 따라서 누군가가 나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개선방향을 조언해준다 하더라도 지존심이 상하기는커녕 너그럽게 인정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자존심은 높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남의 시선이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높이 평가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의 평가를 통해 나의 존재가치를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나의 결점을 지적해주고 개선방향을 조언해주면, 몹시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해 그 사람을 멀리하게 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을 존중하는 만큼 타인을 존중할 줄도 안다. 그러나 자존심만 높은 사람은 자기만 칭찬받고 존경받기를 원하며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다면 자존심 상해하고 깎아내리려 한다.

 

자기가치의 확인

 

그러면 어떻게 자존감을 높일까? 스탠퍼드 대학교 사회심리학 교수인 클로드 스틸(Claude M. Steele) 박사는 자기가치의 확인 강조한다. 그는 자기가치 확립이론을 통해 자기 이미지에 중대한 위협이 닥쳤을 때 그 위협과 무관한 자기의 중요한 측면을 확인함으로써 총체적으로 긍정적 자기개념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가치를 확인하여 자아개념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게 되면 자기 이미지를 손상할 수 있는 중대한 상황에 놓였을 때 그러한 위협을 완화할 수 있고, 자기 위협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심적 자원을 제공해준다고 그는 강조한다.

 

각자무치(角者無齒)라는 말이 있다. ‘뿔을 가진 자는 날카로운 이가 없다’는 뜻으로, 어떤 사람도 강점이나 재주를 모두 다 가질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서너 가지의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한다. 자신의 약점에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이 강점을 발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자존감을 기르는 한 방법이다.

 

 

 

바울이 이같이 말하자, 베스도가 바울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바울이 대답했습니다. “베스도 각하여, 나는 미친 것이 아니요,

(내가 맑은 정신으로)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왕께서는 이 일들을 모두 다 알고 계시므로 내가 왕께 거리낌 없이

말씀드리고 있사오니, 이 일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모르시는 것이 없다는 것을

나는 확신하나이다. 이 일은 어느 한쪽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니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왕께서는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그러자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고 하느냐?”

바울이 대답했습니다. “말이 적으나 많으나 나는 왕뿐만 아니라, 내 말을 듣는 모든

분들이 다 이렇게 쇠사슬로 결박된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그때 왕을 비롯하여 총독과 버니게와

그 밖에 그들과 자리를 같이했던 모든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면서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당할 일을 하지 않았다”하고

서로 말하였습니다.

이에 아그립바는 베스도에게, “이 사람이 황제께 상소하지 않았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하고 말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새로 부임한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2세 왕과 가이사랴의 유력한 사람들 앞에서 예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한다.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변명이지만 자신의 과거와 예수님을 만난 과정과 함께 예수께 복음의 증인으로 세우심을 받은 것 또한 이 예수님이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이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으라 말하였다.

바울이 증언하는 예수 복음을 듣는 사람들은 유대의 유력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는 쉽지 않다.

세상적인 힘(권력, 부, 지식 등)을 가진 사람들은 심령이 가난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미 가진 것들이 많아서 복음을 들을 때 베스도 처럼 미친 소리로 듣거나 아에 들으려고를 하지 않거나 자신의 이성적 생각이 앞서서 '너나 잘하세요'하는 마음을 가지기 쉽다.  

비록 결박된 죄수의 입장이지만 바울은 자기 변명의 기회를 통해 복음을 전하였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

바울은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유력한 사람들과 크게 위엄을 갖추고(23절) 로마 제국이 부여한 권력을 한껏 나타내며 결박되어 죄수의 몸으로 서있는 그를 심판관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들에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한다" 하였다.

권력자들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음은 성령께서 그를 주장하심이며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원의 확신과 진리 안에서의 자유함과 복음 증거자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음을 본다.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의 자존감.

하나님 자녀됨의 신분의 변화.

장차 상속받을 영광의 기업의 풍성함.

천국의 소망...

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어버릴 때 땅의 것을 부러워하고, 사랑하고, 탐하는 타락한 종교인으로 전락할 뿐이다.

맛을 잃은 소금은 버려져 세상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데...

그 수치를 어찌 감당할꼬.

 

(정읍 하이랑교회 설교집에서)

 

 

인생의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 가정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긍휼하심으로 늘 평강으로 인도해 주시고,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가정을 이루게 하시며, 두 아들의 장래가 주님의 믿음 안에서 소망과 꿈을 키워가도록 하나님의 넘치는 지혜와 도우심으로 이끌어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과 살아계심의 역사가 삶의 현장에서 온전히 드러나게 하소서.

특별히 큰 아들을 향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직장에서 자신의 꿈과 비전을 마음껏 펼치며 겸손히 섬겨가며 실력을 키워가도록 늘 함께해 주시고, 작은 아들의 직장에서 능력과 인품을 인정 받을 수 있도록 건강과 지혜로 함께 하시고, 두 아들의 장래의 배우자를 믿음 안에서 예비해주시고, 우리집 장막을 더욱 넓혀주는 축복이 임하여 주시며, 우리 가정이 구원과 축복과 은혜와 회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기도가 더욱 깊어지고 하나님의 비전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정을 통해 날마다 이루어가게 하시며, 자신의 소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가지 않게 하소서.

창립50주년을 맞는 우리교회가 말씀과 기도로 날마다 거듭나게 하셔서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가게 하시며, 건축위원회 조직과 운영이 하나님의 지혜로 믿음과 마음을 모으게 하시며, 아프고 힘들어하는 모든 성도들이 건강을 회복하고 주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평안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능히 이겨내도록 이 나라를 위로하시며 속히 회복하도록 구원과 도움이 손길이 임하여 주옵소서. 

또한 우리 대한민국이 참으로 자신의 욕심과 이념으로 갈라진 마음을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로 통합하며, 공의와 진실로 다스려지는 이 나라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주장하시며, 다음세대가 꿈과 비전을 이루어가도록 교육하게 하시고, 모든 백성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하소서. 

장기적인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하고자 하오니 모든 거래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도록 여러가지 여건을 준비하여 주셔서 가정이 온전히 아름답게 마무리하게 하시고,  한 주간도 가정이 믿음과 사랑으로 회복되고 날마다 서로 소통하고 행복한 날들을 보내게 하소서. 아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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